몰려오는 돈 … 부동산 위축에 부동자금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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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은행의 서울 압구정지점 직원들은 9일 오후 문의전화를 받느라 하루를 보냈다. 이날부터 한시 판매한 연 5.25%짜리 정기예금이 문제였다. 5000만원 이상 예치 고객에게만 파는 이 상품 소식이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자 고객 문의가 빗발친 것이다. 정용훈 HSBC은행 마케팅팀 상무는 "9일 하루에만 고객 문의가 평소보다 3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투자할 곳을 잃은 부동자금이 은행의 고금리 특판 예금이나 증권사의 펀드 등으로 몰리고 있다. 은행도 돈 굴릴 곳을 못 찾아 고전 중이다. 지난해까지 한 달에 3조~4조원씩 늘어나던 부동산담보대출이 급감하면서다. 요즘 은행들은 중소기업이나 소호(SOHO) 대출을 크게 늘리는 등 틈새시장 찾기에 안간힘이다. 이 바람에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은 사상 최고 규모인 7조9000억원이나 늘었다. 한국은행은 시중에 떠도는 돈(6개월 미만 자금)이 5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특판예금에 몰려드는 뭉칫돈=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정기예금은 3조8000억원 늘었다. 전달의 1600억원에 비하면 급증세다. 주요 은행이 연 5% 이상의 고금리를 제시하면서 단기유동성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연 5.1~5.3%의 특판 상품을 판 신한은행에는 한 달 동안 2조5000억원(기존 정기예금 연장분 포함)의 돈이 몰렸다. 하나.외환 등 상당수 은행이 다음달까지 특판 정기예금을 팔 계획이어서 정기예금의 이 같은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 소호.중소기업으로 눈 돌려=신한은행은 올 초 본부장 관할의 소호고객본부를 부행장이 지휘하는 소호고객그룹으로 격상시켰다. 현재 7개인 소호금융센터를 올해 안에 두 배가 넘는 8개나 신설할 계획이다. 국민은행도 올 초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가계소호여신부에서 소호여신부를 독립시켰다.

은행들이 이렇게 중소기업이나 소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9억원에 그쳤다. 2000년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저다. 3월의 438억원 증가에 이어 사실상 두 달 연속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달 7조9000억원이 늘었다.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은 많아야 월 5조원 늘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중소기업뿐 아니다. 은행들은 중소 자영업자를 겨냥한 이색 소호 대출 상품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약국 대출'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전국에 있는 약국을 대상으로 ▶의약품 구매자금 ▶운전자금 ▶창업자금 ▶시설자금 등 약국 운영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자금을 지원해 준다.

하나은행도 개업한 수의사들을 대상으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해 주는 '수의사 클럽 대출'을 선보였다.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특화상품이다.

그러나 은행의 소호 대출 경쟁은 경기 변동에 따라 부실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은 3월 말 현재 1.3%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4%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말보다는 0.2%포인트 오른 것이다.

김창규.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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