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금사 신설 허용해야 한다|강병호<한양대·경영학>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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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정치논리에 경제논리가 희생되고 마는 경우가 잦아 이에 대한 비판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에 몇몇 신문들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여론화한 종합금융회사의 신설방침에 대한 보도는 안타깝게도 신문의 보도가 자신도 모르게 정치논리에 휘말려 경제논리에 따른 정부의 방침을 잘못된 것처럼 일그러뜨린 경우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합금융회사를 신설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옳은 것이다. 신설되는 종합금융회사를 과연 어느 누가 차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비록 민감한 것이긴 해도 그 같은 문제는 따로 풀어야지, 그런 「정치논리」때문에 종합금융회사를 신설해야한다는 「경제논리」까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종합금융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종금사가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 같은 점이 바로 종금사를 신설해야 하는 근본적인 당위성의 하나가 된다.
종금사는 우리나라의 외환사정이 매우 나빴던 지난 70년대 중반, 외자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외자도입이라는 문제가 워낙 발등의 불이었던 관계로 당시 종금사는 예금과 보험만을 제외한 모든 금융업무를 취급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은행은 은행대로, 단자는 단자대로, 증권은 증권대로 철저히 업무 영역을 가르고 있는 우리 나라의 금융제도상 종금사에 대한 이 같은 파격적 대우는 설립 당시부터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바로 이 때문에 70년대 중반과 후반에 설립된 6개의 종금사들은 10년 이상이나 경쟁 없이 과점적 이윤을 누려왔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갖가지 규제의 사슬에 묶여 운신을 제대로 못하는 와중에서도 종금사들은 외국과의 합작이라는 방패 막을 배경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여건 속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존재해왔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제는 신규 진입을 허용해 과점적 시장 지배에 따른 폐해를 시정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다. 또 이미 우리가 증권업이나 보험업의 대외 개방 때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 닥칠 종금업의 대외 개방에 앞서 대내개방을 먼저 해야한다는 논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간 나왔던 다음과 같은 종금사 신설 반대 주장은 논리성이 약하다.
첫째로 종금사 신설로 과당경쟁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종금사에 앞서 허용된 은행이나 증권사의 신규 설립 등이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 현재 금융기관의 수를 보면 은행은 외국은행의 지점까지 합쳐 1백여 개, 증권사는 40여 개, 보험사는 50여 개에 이르는데 종금사는 2∼3개 사를 추가해도 8∼9개 사에 불과하다.
둘째로 한편으론 금융기관의 대형화 운운하면서 왜 기존 종금사를 더 키우지 않고 신규 진입을 허용하느냐 하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소수 업체가 과점적 이윤을 누리고 있는 상태에서 기존 업체의 규모를 늘려준다면 이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황금 바위를 낳는 거물을 만드는 격이 될 것이다. 또 이는 특히 통화관리차원에서 자산·부채 등을 엄격히 제한 받고 있는 은행 등과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로 종금사의 원산지인 영국의 경우를 보면 그 성격이 도매금융인데 종금사를 중소기업전문기관으로 유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은 실체보다는 포장만을 본 감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종금사는 이미 영국의 머전트 뱅크나 미국의 투자은행이 아니다. 종금사의 근래의 업무 형태를 보면 주로 외자를 도입해 대기업에 리스로 운용함으로써 국내외 금리 차를 수익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국의 머전트 뱅크는 빅뱅(영국의 금융 개혁)이후 상업은행과 성격상 큰 차이가 없어졌으며, 미국 투자은행의 주요 업무중 하나는 중소기업의 창업에서 상장에 이르기까지 자금지원·경영기술지도 등 신규 진입 자를 정해놓고 형식만을 갖추려 한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 점은 당국이 소명해야 한다.
신규 진입이 정치논리 아닌 경제논리에 의한 결정이라면 당초계획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며, 실사 당초 계획이 순수하였으나 반대 여론 때문에 후퇴한다 하더라도 정치논리 때문에 경제논리를 포기했다는 불명예는 씻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진입 자격을 특혜 시비가 적은 은행에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는 은행 경영의 합리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논리는 향후 금융산업개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금융산업의 개편은 누구에게 비생산적인 렌트를 부여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규칙이고 효율적인 제도인가라는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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