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귀기울이는 소탈한 성격/내가 만나본 라모스/홍성호 국제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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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6년 대선땐 군부중립 유도/6·25참전… “이젠 한국이 도와야”
코라손 아키노의 황색물결이 20년 아성의 마르코스독재를 휩쓸어내던 86년 2월의 필리핀 대통령선거전에서 만난 피델 라모스대통령당선자(64·당시 중장으로 군참모총장 대행)는 강인하고 단호한 모습이었다. 별로 크지않은 키에 깡마른 체구,검게 그을린 얼굴은 그가 40년 가까이 군생활을 해오면서 몸에 밴 꼿꼿한 자세와 함께 범접하기 어려운 인상을 풍겼다. 더군다나 그는 당시 필리핀 정국을 좌우할 수 있는 군부의 최고실력자였고 부정선거이기는 하나 재집권에 성공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오른팔이자 가까운 인척이기도 했다.
때마침 선거에 겹친 필리핀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에 만난 라모스중장은 그러나 몇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매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무모하게 권력에 집착하는 부류의 인물이 아님을 쉽게 알게 해주었다. 정국의 앞날을 가름하는 긴장된 시국임에도 그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를 보였고 필리핀의 명산물인 여송연을 피워물고 농담하기를 즐겼으며 인터뷰 도중에도 집무실로 찾아오는 농민들의 민원을 귀담아 듣고 즉각 처리하는 등 권위의식을 찾아보기 힘든 소탈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라모스의 이런 태도는 당시 필리핀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외국언론 집단에만 보여진 것이 아니라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필리핀 군부와 국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르코스에 의해 군최고통수권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마르코스와 아키노의 대통령선거에서는 군부의 엄정중립을 유도했고 부정선거 사실이 밝혀지자 과감히 마르코스와의 결별을 선언,아키노여사를 지지함으로써 필리핀의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950년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후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50년대는 한국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어서 파병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바뀌어 우리가 더 어렵다. 우리는 그때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동남아의 많은 나라들이 북한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데도 최후까지 버티고 있다. 어려울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니 이제부터는 한국이 우리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한다』고 정치지도자다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제헌의회 의원과 외무장관을 지낸 나르시스코 라모스의 아들인 그는 이번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재선된 레티시아 라모스 샤하리의 오빠이기도 하다. 마르코스와는 사촌사이. 52년 한국전에 이어 66년 월남전에도 참여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에어로빅과 조깅 등으로 체력을 단련한다. 「약골」 「미스터 조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라모스는 28년 루손섬 북서부 판가시난에서 태어나 부인과 다섯 딸을 두고 있으며 역기들기와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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