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가 된 '황제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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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삼성전자)이 애물단지가 될 줄이야..."

지난 2004년 삼성전자를 종합주가지수와 묶어 ELS 상품을 만들었던 한 증권사 상품기획담당 직원은 한숨을 내 쉬었다.

설마 삼성전자 주가 상승률이 지수상승율을 밑돌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푸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증권시장을 되돌아볼 때 삼성전자는 황제주이자 대들보주였다.

상승기에는 가장 빨리,더 많이 오르고 증시가 하강국면으로 진입하면 든든한 지수 버팀목 역할을 해 주었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삼성전자 주가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삼성전자를 직접 투자한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보수적으로 간접투자를 했던 ELS펀드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입게 됐다.

한 증권사가 만든 삼성전자 연계 ELS 펀드의 경우 지난 5월 2일 현재 마이너스 60%대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이 상품은 2004년 5월 3일당시 종합주가지수 866포인트, 삼성전자 주가 556000원에 맞추어져 있다.

만기는 2007년 5월이지만 발매이후 지수(코스피 200)가 발매시점보다 높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상승률이 지수 상승률을 웃돌면 연8% 수익률로 조기상환되는 구조다. 그런데 그런일은 한번도 일어나주지 않았다.

5월 2일 현재 주가지수는 발매당시에 비해 80% 가량 올랐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3.4% 상승에 그쳤다.이 펀드가 마이너스 60%대의 손실을 기록한 것은 이럴 경우 삼성전자와 종합지수의 상승률 차이만큼 원금을 깍아먹기 때문.

이 상품을 산 한 투자자는 "원금보장을 약속받은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삼성전자가 이 지경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ELS에 연계된 대형주들 상당수가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이다. KIS 채권평가사에 따르면, ELS 상품 2307개 가운데 40%이상의 손실이 난 것은 164개.

대부분 삼성전자 외에 현대차.기아차.삼성SDI.LG전자.LG필립스LCD 등 대형 우량주의 수익률과 연계 돼 있다.

그동안 코스피 시장을 대표해온 이 6개 대형 우량주들은, 올 들어 저조한 실적으로 주가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 증권사들은 이들 종목에 대한 목표 주가도 연이어 내리고 있다. 현대증권은 최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68만원에서 64만원으로 낮췄다. 교보증권과 CJ투자증권.대신증권도 하향 조정했다. LG필립스LCD와 삼성SDI 등 다른 대형 우량주는 상황이 더 나쁘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달 만기가 돌아오는 ELS의 환매를 포함해, ELS 원금 손실 사태가 해당 우량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달 만기물량만 5000억원 가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LS가 대형 우량주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종목의 주가에만 연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ELS의 원금 손실 소식은 연계된 대형 우량주의 주가 전망에 불가피하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의 강규안 책임연구원은 "대형 우량주들이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일시적으로는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 보았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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