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이야기

로봇은 '미래의 이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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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래의 이브'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자 빌리에 드릴라당이 1886년 발표한 소설 제목이다. 이 소설은 로봇 역사를 다룰 때 종종 인용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과학자 에디슨은 자기가 아는 변덕스러운 한 여자를 대신할 완벽한 여성 해덜리를 창조한다. 기계 원리에 의한 정신과 초소형 전자기 엔진을 사용한 그녀의 신경계까지 백 년이 훨씬 지난 21세기의 주제인 나노바이오 기술과도 비슷해 보인다.

힘들고 지루한 일을 마냥 열심히 하는 충직한 로봇 대신 해덜리처럼 인간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로봇은 소설과 영화 등에 자주 등장했다. 1927년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선 여주인공 마리아를 본뜬 복제로봇을 만들었다. 38년에는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가진 아름다운 안드로이드 로봇이 독신자 숙소에 일하러 들어가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소설도 발표됐다. 공상과학자 아시모프는 인간 지능과 감성을 가진 로봇 이야기들을 출판했고 영화로도 소개됐다.

로봇은 응용분야 관점에서 제조현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과 청소나 경비와 같이 비제조업용 서비스 로봇으로 분류한다. 위에 나온 로봇들은 형상이나 감성 및 지능이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므로 앞의 분류와는 다른 개념이다. 통상적으로 인간형 골격구조를 가진 로봇은 휴머노이드, 사람 얼굴이나 표정을 가진 로봇은 안드로이드, 그리고 인간의 신체 일부가 기계 전자식으로 되어 있으면 사이보그라고 칭한다. 기술적인 단계로 보면 운동 위주의 휴머노이드에서 감성이 추가되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나노바이오 기술이 관건인 사이보그로 점차 확대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휴머노이드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고, 최근 몇 년 사이엔 안드로이드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모두 인간형 얼굴에 표정을 묘사하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 개발한 안드로이드는 얼굴 표정이 많지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개발한 것은 그 표정이 훨씬 풍부하고 제스처도 크다. 필자도 이러한 안드로이드 기술이 인간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로봇과 인간을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바꾸는 계기가 될 걸로 보고 앞으로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장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노엘'이라는 임산부 로봇은 의과대학생들에게 임산부 진단과 신생아 출산을 교육하는 로봇이다. 맥박.호흡.심전도 등 다양한 임산부 증상을 보여주며 의대생이 잘못 다룰 경우 로봇의 혈색이 변하는 등 실제 다급한 환자처럼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일본 나고야대에서 개발한 환자 로봇 '이브'는 복강경 수술 및 혈관수술 실습용이다.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게 되면 환자에게 통증이 오거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 로봇은 의사가 수술 도구를 잘못 조종하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기능도 있다. 광탄성 재료를 사용한 첨단 기술이 사용됐다.

최근 중앙일보에 소개된 성인용 로봇도 마찬가지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로봇은 사람과 동등한 파트너이며 감정 교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게 이 로봇 제품의 주안점이다. 향후 무시할 수 없는 기술 분야 및 시장인데 우리나라는 미풍양속에 저촉된다고 그냥 지나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안드로이드라는 로봇 명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요자의 필요에 맞게 기능별로 개발돼 우리 곁에 와 있다. 필자는 종종 21세기는 다양한 수요자가 필요에 따라 로봇 기술을 첨가해 사용하는 시대라고 얘기한다. 로봇 전문가는 옆에서 도와주면 될 뿐이다. 많은 로봇 공학자가 움직이는 로봇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지만 로봇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부터 관점을 넓힐 필요가 있다.

박종오 전남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

◆약력=독일 슈투트가르트대 로봇공학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국제로봇연맹 회장, 현 국제로봇연맹 집행위원 및 한국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