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대문야구장' 대통령배 41년을 추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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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시집 보내는 것 같다." "기분이 싸~하다." 41년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가 동대문야구장에서 배출한 스타들은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국내 고교야구 사상 첫 3연타석 홈런으로 1975년 광주일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김윤환씨, 제1회 대회 경북고 우승의 주역 강문길 감독(단국대), 80년 대회 타격 전관왕(5관왕) 출신인 허세환 광주일고 감독,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이들은 더 진한 기억을 찾아 들어갔다.

1975년 5월 24일, 전라남도 광주는 택시 한 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대부분의 시민이 TV가 있는 곳에 모여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시 동대문야구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이미 표가 매진됐지만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호남지역 팀으로는 처음으로 광주일고가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9회) 결승에 오른 것이다.

상대는 67년 1회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74년까지 무려 여섯 번이나 대통령배 정상에 오른 경북고였다. 모두가 경북고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광주일고는 4번 타자 김윤환 선수의 3연타석 홈런에 힘입어 경북고를 6-2로 꺾고 우승기를 들었다.

고교 야구 사상 첫 3연타석 홈런이었다(역대 고교 야구를 통틀어 네 번의 '3연타석 홈런'이 나왔고, 그중 세 번이 대통령배에서 탄생했다). 32년이 흘러 대통령배는 41회를 맞이했다.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기 전에 열린 마지막 대회에서 광주일고는 다시 결승에 올라 서울고와 명승부를 펼쳤다.

지금도 올드팬들이 대통령배 최고의 스타로 기억하고 있는 김윤환(50)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부산에서 자재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에게는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가 하나 있다. 75년 대회 결승전 라디오 중계방송을 녹음한 것이다. TV 녹화 테이프는 방송국을 통해 알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그는 가끔 테이프를 돌려 듣는다.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에게 "아버지가 한때는 이랬다"며 자랑스럽게 들려주기도 한다. 낡은 테이프에는 김씨 인생 최고의 순간이 녹아 있다.

"빨간 장갑으로 유명한, 작고하신 김동엽씨가 해설을 했어요. 김씨가 '2사 1, 2루 상황입니다. 만루 되면 힘들어요. 경북고 에이스 성낙수는 한 점을 내주더라도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합니…'라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홈런을 딱! 친 거예요. 아나운서가 김씨의 말을 수습하느라 더 크게 소리지르더군요. '또 넘겼습니다. 스리런입니다' 하고요. 이걸 나중에 들으니 더 짜릿하더라고요."

김씨는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홈런은 2구째 직구였고, 두 번째는 2구째 인코스 커브였고, 세 번째는 인코너 직구였다. 그만큼 생생하다. 타격 4관왕(홈런.타율.타점.최다 안타)에 오른 김씨는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됐다.

"세 번째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아무리 뛰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허공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을 밟는 순간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가 귀를 때리더라고요. '이게 생시구나'했죠."

대기록은 많은 추억을 안겨 줬다. 우승 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농부들이 축하의 악수를 청하던 일, 광주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오색가루를 맞던 일, 학교로 날아온 수많은 팬레터를 선생님들이 숨겨 놓은 일, 기자들이 김씨를 찾아 몰려오던 일이 아직도 엊그제 같다.

프로가 없던 시절, 고교야구는 한국 스포츠의 꽃이었다. 동대문 지역에 우뚝 선 동대문구장은 야구의 성지였다. 그곳에서 우승기를 들었다는 건 인생의 축복이었다.

"3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심장이 뜀박질 쳐요. 동대문구장은 나에게 따뜻한 어머니 품 안 같은 곳입니다. 그곳이 이제 곧 없어진다니 싸~하네요."

강인식 기자 <kangis@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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