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변 못가린다 때려죽인 엄마보다 아빠 더 나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예쁜 어린딸 때려 숨지게한 의붓엄마보다 죽음 외면한 아버지에 더 큰 분노 느껴요"

지난달 21일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자신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진 여섯살 민모양의 사인이 의붓어머니 정모(33)씨의 구타로 밝혀지면서 네티즌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정씨는 19일 오전 9시30분쯤 안방에 누워있던 민양이 평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가슴과 배 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경찰은 사건에 앞서 지난달 10일 민양이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 확인을 했으나 민양 부모가 "집안 일에 간섭 말라"며 협조하지 않아 진상 파악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을 '충남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네티즌이 본사로 가슴 절절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어린 아이를 때려 숨지게한 의붓엄마보다 그 죽음을 외면한 아버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느낀다는 '두 아이 엄마'는 "스스로 경찰서에 출석해 폭력을 방임했던 당신을 처벌해 달라고 애원해 달라"며 그렇게 해서라도 부디 아가의 영혼을 위로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두 아이 엄마'가 보내온 편지 전문이다.

김진원 기자


콩쥐의 죽음을 외면한 그 아버지를 고발합니다.

-평택 의붓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아 죽은 아가의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당신의 얼굴도 당신의 이름도, 심지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이 긴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누구보다 비통하고 절통하며 간장이 끊어지는 고통으로 이 글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나는 얼마 전 뉴스에서 당신의 아이가 새엄마로부터 무진 매를 맞으며 살다 결국엔 그 매에 죽고 말았다는 실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몸은 단 한 곳, 성한 곳이 없었고 등은 시퍼렇다 못해 검은 색이 돌 정도로 멍이 든 그 숨 막히는 슬픔을 보았습니다. 다리며 손목이며 골절된 흔적이 너무도 많고 죽는 그 순간까지 깁스의 흔적이 남아 있고 얼굴은 온통 꼬집힌 자국과 멍으로, 심지어 어깨에는 물린 자국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아, 이렇게 글로 아이의 고통을 옮기는 이 순간조차도 나는 숨이 막힙니다. 아이가 당했을 고통과 외로움에 치가 떨립니다.

그리고 아이는 그 매에 죽었습니다. 여섯 살 어린 몸이 어찌 그 많은 폭력을 견뎠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이고 가슴은 터져버릴 것같습니다. 아이가 죽고 며칠 되지 않아 당신과 당신의 그 아내가 TV에 나오더군요. 비록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었지만 목소리와 태도는 너무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그 아내는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더군요. 그러나 나는 그 살인마 아내보다 더 당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아이의 장례식장 앞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더군요. 두 손은 주머니에 넣고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고 또렷하게 "머, 아이에게 미안하죠."

아, 미안하다구요? 그래요 미안한 일이죠.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 안됐습니다. 오히려 아무 말을 못하고 흐느끼거나 "내가 죽일 놈입니다. 내가 미쳤습니다" 그렇게 울부짖어야, 그래야 했습니다. 그래야 최소한 먼저 아가를 보낸 아빠의 마음 한자락이라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아가가 그 지경이 될 동안 한번 살펴주지 못한 그 씻지 못할 죄를 그렇게나마 사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미안하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은 마치 '사정이 안돼 보육원에 보내니 미안하죠' '애 먹고 싶은 것 다 못 사주니 미안하죠' '애 배우고 싶다는 발레 하나 못 가르치니 미안하죠'…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같았습니다. 죽은 아이에게 '미안하다'니요. 자신의 여자에게 매 맞아 죽은 아이를 두고 '미안하다'니요.

당신은 이렇게도 말하더군요 " 친엄마처럼 잘해주는 줄 알았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정말 그렇게 알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은 젊은 나이에 벌써 치매 기운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TV 속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애가 하루 걸러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드는걸 동네 사람이 다 아는데 어떻게 한 집 사는 아빠가 몰라요? 아, 바보라도 알겠네."

그래요. 바보라도 다 아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친엄마처럼 잘해주는 줄 알았다'구요. 애가 '자전거 타다 그렇게 자주 깁스를 해야 했다'구요? 퍼렇게 멍든 얼굴로 매일을 살아도 잘해주는 줄 알았다구요?

나는 당신의 이 말이 너무도 화가 납니다. 아니 당신의 딸, 그 꽃처럼 예쁜 여섯 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생각하게 되면 더 미칠 것같은 마음이 듭니다. 아이에게 당신은 마지막 보루였는지 모릅니다. 아빠에게 말해야지, 다 일러야지 아이는 수천 수만 번 마음 속으로 다짐했을 것입니다. "아빠, 새엄마가 날 때렸어. 그래서 너무 아파." 얼마나 그렇게 많이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퇴근하고 돌아온 당신은 양처럼 거짓 웃음을 웃는 그 아내에게만 눈길을 주었겠지요. 그 아내의 아이에게만 따뜻한 미소를 주었겠지요. 그리고 구석에 멍들어 앉아 있는 아이를 힐끔 보며 이렇게 말했겠지요. "쟤는 또 왜 저래?" "아, 오늘도 똥 오줌을 못 가리잖아요. 누굴 닮아 그런지 아직도 그런 것 하나를 못하네요." 그러면 당신은 아내에게 그 모진 매를 맞은 아이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 에이구 참"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외면했겠지요. 그렇게 아이는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그 아내보다 당신이 더 밉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당신의 '그녀'보다 나는 마지막 천륜을 외면한 당신이 더 밉습니다. 마지막까지 외롭게 아프게 갔을 아이의 그 서러움이 느껴져 정말로 당신이 밉습니다.

아십니까? 아이는 그날 밤 배가 터지는 매를 맞고 밤새 끙끙 아파하며 혼자 긴 밤을 보냈다는 것을요. 다음날 오후 3시 죽어가던 그 순간까지, 아침에 나가 아이가 죽을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그녀'로부터 한끼의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는 사실을요. 밤새 앓던 아이는 마지막 가는 길에 밥 한끼를 못 먹고 그렇게 갔습니다.

당신 정말 몰랐습니까? 당신의 그 예쁜 딸이 그렇게 매 맞고 아파했던 사실을 정말 몰랐습니까? 등이 시커매지도록 매를 맞아 걸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당신, 정말 몰랐습니까? 하루가 멀다고 멍이 드는 아이의 얼굴이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온통 꼬집힌 자국으로 얼굴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그 딸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당신 정말 몰랐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의 아내를 안았습니까? 그 밤에?

나는 지금 너무도 큰 분노로 가슴에 불이 일 것같습니다. 재혼한 많은 가정의 엄마들이 그렇지 않듯이 아빠들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길 기도합니다.

그래요, 나는 제3자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의 가족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를 압니다. 그 공포 영화같은 상황 속에서 혼자 떨고 차마 울지도 못해 흑흑- 숨을 죽이며 흐느꼈을 그 아가를 기억하고 안아주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가여워서 이렇게 며칠째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혼자 삭이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당신에 대한 분노로 숨이 턱턱 막혀올 것같은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당신께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아가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에서라도 스스로 경찰서에 출석해 폭력을 방임했던 당신을 처벌해 달라고 애원해 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당신의 그 아내를 찾아가 면회하는 그런 일을 제발 하지 말아 주십시오. 오히려 세상 가장 지독한 말로 그녀에게 말해주십시오. '그만 죽어달라'라고요.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섯 살의 아이. 실제로는 세상에 나온지 겨우 4년이 되는 아이입니다. 얼굴은 여전히 아가의 얼굴 태를 벗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제법 트인 말문으로 가끔 어른들을 깜짝 깜짝 놀래킬 정도의 언어 능력을 모두 갖춘 아이. TV 속 인형극을 보며 한 없이 빠져들고 '엄마 파워레인저 사줘요" 허물없이 떼쓰고 조를 나이의 아이. 어린이집 소풍에 마이쮸를 사달라고 티 없이 웃으며 말할 아이.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흥보도 아닌 아이가 매를 맞아 죽었습니다. 단 한번 아버지의 품에서 응석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그 먼 길을 갔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왜 내가 당신을 고발하는지. 왜 내가 오히려 당신이 유죄라고 말하는지 이제는 아시겠지요.

부모와 자식은 억겁의 연으로 만난다고 합니다. 다른 세상에서 아이는 당신의 무엇으로 태어날지 모르겠네요.

당신은 이 글을 보며 무연히 외면할지도 모르겠네요. 웬 참견이냐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은 같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렇게라도 아가의 원혼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진실로 이 글이 당신의 숨겨졌던 눈물샘을 흔드는 그런 참회의 기회를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아가, 먼 먼 곳에서 아프지 말고 평안하거라. 한 하늘 아래 살면서 너를 알아보지 못했던 어른들을 용서해라 정말 정말 미안하다 아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