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O법안 통과 “자리 비우기”/가네마루 방미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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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큰일」때마다 거물외유 일 국회 관행/부시는 체면 세워주고 쌀개방 요구
일본 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신(금환신) 자민당 부총재가 2일 미국을 방문한다.
방위청장관이던 78년이후 13년만의 방미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전 자민당 간사장이 수행한다. 그는 4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회담을 갖는다.
가네마루부총재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의 참의원통과를 앞둔 긴박한 시점에 미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일본에서는 구구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가네마루부총재는 그동안 미국 방문이 소원이었다. 일본 정계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으레 미국 대통령과 만나 회담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야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치인이 된다.
그런데 가네마루부총재에겐 그런 경력이 없다. 있다면 북한밖에 없다. 지난 90년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 위원장과 함께 북한을 방문,김일성과 자민·사회·노동 3당 공동성명을 한뒤 북한통으로 자처해왔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북한 관계개선을 도모하겠다며 미국방문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로 골치를 앓는 미국은 가네마루부총재의 이같은 행위를 불쾌하게 생각,부시대통령과의 면담제의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부총재의 전략도 바뀌었다. 그는 미국 방문주선자를 시마 게이지(도계차) 전 NHK회장에서 마쓰나가 노부오(송영신웅) 전 주미대사,세지마 류조(뢰도용삼) 전 이토추(이등충) 상사 회장으로 바꾸고 북한 문제는 꺼내지 않기로 미국에 약속했다.
한편 미국은 가네마루부총재와 같은 「요정정치가」 스타일을 싫어하지만 그를 이용할 필요가 생겨 그의 미국 방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고 한 외교소식통은 밝혔다.
즉 미국은 가네마루부총재의 미국 방문을 받아들여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대신 그에게 일본 쌀시장 개방이라는 악역을 주문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가네마루부총재는 쌀시장 개방에 앞장섰다 해도 그의 출신지인 야마나시(산이)현이 벼농사가 보잘것 없기 때문에 정치적 타격은 그리 크지 않다. 또 그는 그동안 줄곧 쌀시장개방을 주장해왔다.
미국은 가네마루부총재를 일본 쌀시장개방에 이용할 필요가 있어 부시대통령 면담방침을 세우고 스케줄을 조정해왔으며 대통령 선거유세로 바쁜 부시대통령이 일정을 조절하다보니 4일로 면담날짜가 잡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 총리도 3일부터 브라질 리오에서 열리는 지구서미트 때문에 일본을 비운다. 때문에 다케시타·가네마루·오자와 등 자민당 최대 파벌인 다케시타파 영수들이 일본을 비운 사이에 PKO법안 참의원 통과강행이 점쳐지기도 한다. 법안통과 강행으로 일본 정국이 경색될때 3인이 귀국,경색된 정국을 풀어간다는 시나리오다.
89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 총리의 국회증언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자민당이 예산안을 강행처리했을때도 가네마루부총재는 일본을 떠나 있다가 그뒤 조정에 나섰다. 이같은 가네마루류의 정치스타일때문에 PKO법안의 통과강행에 대한 일본 정가의 관심은 더욱 높은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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