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일본 자유기고가 도다이쿠코씨-"양국 「감정의 골」잇는 가교 되고파" 일 언론에 한국소개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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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쪽발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사이의 메우기 힘든 골이 왜 생겼는지, 이 같은 감정의 갭을 메워 나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되는 한일관계. 최근엔 정신대문제와 점차 확대되는 무역마찰로 인해 「김대중 사건이후 최악의 관계」(일본주재 한국대사관 정무과)로까지 비추어지고 있지만 한국관계전문여류작가 도다 이쿠코(32·호전욱자)씨는 「재 서울7년 친한파」 에 만족지 못해 지난해 12월 아예 한국남성과 결혼한 「반쪽 발이」다.
일본의 유명월간종합지 『문예춘추』(6월호) 『모아』(4월호) 등에「나의 일한 결혼마찰 전말기」를 사진과 함께 소상히 기록, 일본인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하다. 한데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에 대한 애증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지금은 신랑이 된 사진작가 유은규씨(31)와 만난 것은 지난해 7월. 아사치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AERA)의뢰로 「한국의 무당」을 취재하면서다.
『처음에는 한국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꿈도 꿔보지 않았어요. 아니, 결혼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유씨가 무작정 끌고 그의 가족과 이른바 「맞선」을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씨의 형·누님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귀화해 일생을 같이 살 각오가 돼 있느냐, 어린애가 태어난다면 일본이름을 버리고 한국이름으로 바꿀 생각이 있는가』는 질문을 받았고 도다씨는 『그렇게 대단한 결혼이라면 해봐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부아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도다씨는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문예춘추에 기록했다.
『내가 한국인으로 귀화, 일생 한국인으로 생활한다(?). 이제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다. 문득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오늘부터 일본인이므로 일본이름을 써라」고 강요당했을 때 한국사람들의 마음도 이런 식으로 동요했을게 아닌가.』
그들 사이 국제결혼의 가장 큰 반대자는 시어머니 되는 유씨의 모친(심씨)과 도다양의 친부모.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에 왕비를 낳은 양반가문으로「쪽발이」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는 유씨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는 결국 은규씨 남매의 「협공작전」으로 누그러뜨렸지만 『말도 안 통하는 「조센진」과 결혼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는 도다씨 양친의 반응을 중간에서 통역해야 하는 도다씨의 마음은 괴로웠다.
결국 양가는 지난해 12월1일 『본인들의 뜻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합의에 도달, 코리아하우스에서 전통예법으로 혼례식을 치렀다.
지금은 결혼 6개월째를 맞은 도다씨는 유씨 집안의 며느리가 된데 대단히 만족한 표정이다.『월 한차례 하는 제사는 아버님의 취미인지라 고생스럽지만 일본에서는 외톨이처럼 살던 제가 수많은 친척·친지에 둘러싸인게 감사하게 생각돼요.』한국적 대가족제도가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얘기다.
도다씨의 출생지는 일본 중부나고야시 부근 아이치 현 도요하시. 지금 일본에서 한창 인기를 모으고있는 TV드라마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 장군의 고향으로 그만큼 일본토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다씨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대학 3년 수학여행때, 한국의 명승지·시골 곳곳을 다니면서 일제시대 저질러졌던 잊고싶은 과거의 흔적과 만났고, 왜 일본이 한국에 이런 일을 했는가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갖게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이 같은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유학을 결심, 85년3월 고려대 사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 강만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도다씨가 한국통으로 일본에 가장 알려진 때는 88년 서울올림픽전후, 87년2월 고대를 졸업한 후 호구지책으로 프리랜스라이터를 선언했고 이때부터 일본에서 나오는 각종잡지에「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청탁 받아 기고했다.
도다씨는 이 글들을 묶어 『한국의 젊은이』『보통사람의 서울가이드』『새 서울을 아는 책』등 한국전문서 4종을 출판했고 이현세의 인기만화 『활』을 번역,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다.
도다씨의 충실한 반려자이자 공동작업자이기도 한 남편 유은규씨는 신구전문대를 나온 사진작가로 지리산 주학동 전통마을을 10년간 취재해온「외곬」카메라맨이다.
『어디 누가이기나 보자』고 시작한 도다씨의「한국탐험」은 쉴 새가 없어 88년부터 2년간 중국 연변지역 조선족들과 같이 생활한 이색경험도 곧 책으로 펴낼 계획을 짜고있다.
『만주하얼빈에서 만난 조선인 정신대할머니 얘기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연을 갖고 있어요.』
도다씨는 신방을 차린 잠실주공아파트(15평)좁은 거실에 한국관련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한국사정을 일본에 알리기에 바쁘다.
그의 이름 「욱자」와 음이 비슷한 「웃자 통신」을 프린트판 4페이지로 엮어 부정기적으로 일본에 사는 친지·가족에게 보내고 있는 것도 그 나름의 「가교」가 되고싶다는 애틋한 심정의 발로다. <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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