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일 법정서 폭로-태평양전쟁 희생자 배상소송 내달1일 동경재판소 첫 공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차 대전 당시 군인·군속·정신대 등으로 끌려갔던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배상소송 첫 공판이 다음달1일 일본 동경재판소에서 해방이후 처음으로 열린다.
이 공판은 지난해 12월6일 일제의 전쟁도발 50주년을 앞두고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공동대표 김종대·양순임)소속 한국인피해자와 유족41명이 희생자전체를 대표해 일본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천만엔(한화 약1억원)의 배상소송을 냄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공판에서는 전쟁당시 강제징병 당해 관동군에 배치됐던 박칠봉 할아버지(70)와 남양군도에 정신대로 끌려가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박말자 할머니(70·일본명 가네다 기미코)등 피해자 3명이 20여분씩의「대표증언」을 하게된다.
『한을 품고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을 20분씩의 증언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만은 일본이 저지른 죄악상을 그들 자신의 법정에서 처음 고발하게 된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만행을 국제 여론화하는데 중점을 둘 방침입니다』양순임 공동대표의 말이다. 원고측인 한국인희생자와 관계자 등 30여명은 소송을 위해 29일과 31일 두 차례에 걸쳐 도일한다.
이들은 일본재판소에서의 증언 이외에도 일본국회의사당 앞에서의 연좌시위,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가두행진 등 일본 내에서의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일본언론들은 이미 NHK-TV가 박 할머니 등 피해자들에 대해 집중 취재하는 등 최근 한국인들의 대일 감정을 의식한 듯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있다.
하지만 재판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예측이 대부분이다.
일본은 피해 국민들 중 처음으로 대만인들이 77년 배상소송을 걸어오자 1심인 동경지방재판소에서 『동정을 금치 못한다』, 2심인 고등재판소에서 『원고의 불이익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는 등의 단서를 달면서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고 지난달 28일 소송이 제기된지 15년만에 최고재판소에서 『일본은 배상책임이 없다』고 최종 판결했었다.
그러나 국제여론을 의식, 87년9월 일본의원 입법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대만인 희생자 2만7천여명에 대해 1인당 2백만엔(한화 1천만원)씩을 지급하도록 했다.
일본은 책임을 공식인정 하는 대신 특별법제정이라는 편법을 통해 얼마간의 돈을 주고 무마해버리는 「지극히 일본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소송에 대해서도 마냥 시간을 끌다가 지칠 때쯤 되면 약간의 위로금을 주고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최근 일본이 패전이후 처음으로 중학교역사교과서에서 자신들의 침략만행을 인정하고 정신대 보상기금을 준비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점에 주목, 예상외에 재판결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번 재판은 결국「일본이 과연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또 한번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혁·봉화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