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2부] 즐거운 집(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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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산골의 바람은 한여름인데도 서늘했다. 벗은 소매로 두둑한 소름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엄마는 뜻밖에도 허탈하게 웃었다. 엄마의 웃음이 나나 무스쿠리를 더 화나게 하는 모양이었다.

"웃어? 세 번이나 이혼해 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웃어?"

엄마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여자는 엄마가 대답이 없자 약간 의기양양해 하는 거 같았다.

"… 저기요. 그거 지금 저에게 상처 입으라고 하신 소리 같은데, 그건 잘못 짚으셨어요. 저 이제는 별로 그런 거에는 상처받지 않아요."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제가 시간 없어서 강연 못 가는 게 이혼했기 때문은 아니잖아요…. 박사학위까지 받으셨다는 분이 그렇게 논리가 빈약해서야…."

엄마도 빈정거리고 있었다.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가정이 파괴되고 아이들이 잘못되는 거야. 박사학위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그래서 한마디한다 왜? 논리? 이것보다 더 논리적인 게 어딨니?"

서저마는 뒤돌아서서 자신이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는 거 같았다. 서저마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서저마 아줌마는 곧 울 거 같았다.

"제가 이혼했던 것이 당신에게 무슨 피해를 주었죠? 내가 당신 남편하고 이혼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아이들도 있는데 반말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네."

"아이들 말 잘했다.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난 여기 와서 직접 보고 니네 아이들 불쌍해서 혼났어. 흥! 하기는 사생활이라고? 사생활 좋지. 그 매꼬롬한 얼굴로 또 결혼하고 또 애 낳아보지 그래? 사생활? 누군가 마약 하는 것도 사생활이니까 다들 잠자코 있어야겠네…."

여자가 우리들까지 들먹이자 순간 내가 나서서 말려야 하나, 어쩌나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야! 너… 반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래! 나 이뻐! 얼굴도 매꼬롬해. 근데 너는? 너! 못생겼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못생기면 다야!?"

엄마의 소리가 산골짜기로 퍼져갔다. 난데없는 말에 그 와중에도 킥킥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약간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그 틈을 타서 서저마 아줌마가 여자를 끌고 나갔다. 눈치 빠른 막딸이 아줌마가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핸드백을 들고 그 뒤를 쫓았다. 여자는 좌우 스트레이트를 맞은 것처럼 다리를 꼬며 끌려 나갔다. 엄마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서저마 언니, 안 돼. 음주 운전이야. 요 앞 검문소에서 검문한다고…. 대리 불러! 대리" 하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대리가 여기까지 오나?"

나는 거실로 들어가 작은 담요를 가져다 엄마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엄마는 떨고 있었다. 앞에 놓인 소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들이켜고도 어깨를 옹송거렸다.

"엄마… 못생긴 여자한테 못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해?"

내가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었는데 엄마는 뜻밖에도 울상을 지었다.

"글쎄 말이야. 외모 가지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떻게 해."

나는 빈 소주잔을 들어 엄마에게 내밀며 한잔을 청했다. 엄마는 망설이다가 내 잔에 소주를 따랐다.

"소주를 벌써 먹으면 어떻게 해? 그건 인생의 쓴맛을 알고서야 먹는 거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럽게 "엄마 근데 나 요즘 조금 먹어. 아아! 나도 이제 인생의 쓴맛을 아나봐" 하자 엄마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것아 그게 아니라 요즘 소주 도수가 엄청 내려가서 순해지니까 네가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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