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밥 안 챙겨줘도 잘 꾸민 아내가 좋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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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있을 때도 절대로 헝클어진 모습을 하지 않는다. 세탁소 사람이 오면 반드시 립스틱이라도 바른 뒤 문을 연다."

'국민가수' 패티 김이 올 초 본지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존경스럽다. 결단코 빈정대는 게 아니다. 휴일이면 화장 안 한 얼굴,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우리 아파트 단지에 회사 사람이 안 살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하며 안도하는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올해로 결혼 31주년을 맞는다는 패티 김. 이런 얘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집안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매일 패스트푸드만 먹어도 좋으니 퇴근할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아 달라고 한다." 자신의 식탁을 아내의 꽃단장과 기꺼이 '빅딜'하겠다는 남자의 심리,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지난주에 이어 김수현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아내 친구(김희애)와 바람났던 남편(김상중)이 우여곡절 끝에 아내(배종옥)와 양평의 한 근사한 호텔로 화해여행을 떠난다. 한강이 보이는 창 넓은 식당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아내는 이렇게 묻는다. "이런 데는 (하루 묵는 데) 얼마나 해?" 그러자 남편은 버럭 짜증을 낸다. "제발 여편네 냄새 좀 피우지 마!" 이 남편이나 저 남편이나 공히 자신의 아내가 '여편네'보다는 '여자'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라고 세월의 안전지대에 있는 건 아니다. 주말에 일본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집 '더 드라마' 중 '드라마 거리'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혼자 킥킥거렸다. 동거한 지 6년 된 커플. 남자 부모에게 인사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자가 잠이 든다. 부푼 배, 목에 파묻힌 와이셔츠, M자형으로 벗겨진 이마, 거기다 이를 바드득 갈면서 히죽 웃기까지…. 여자는 탄식한다. "언제 마법이 풀려 이 남자는 두꺼비가 됐을까."

결혼생활은 시간 지나 팍 퍼진 칼국수 면발 같은 여편네와 마법 풀린 배 나온 두꺼비의 2인극이 되기 십상이다. "끼니마다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좋으니 화사하게 단장해 달라"는 남자의 당부는, 아내가 한낱 '여편네'로 전락하는 사태를 어떻게 해서든 막아 보겠다는 절박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편네와 두꺼비가 사이좋게 사는 방법은 뭘까. 우선은 서로 여편네이고 두꺼비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드라마 거리'의 여자처럼 그 남자가 한 때 "큰 키에 총명하고 단정하며 깔끔한 남자였다"는, 과거를 종종 떠올려 줘야 한다. 아주 가끔은 여편네와 두꺼비라는 '숙명'을 거역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남편의 꽃다발에 "먹지도 못할 걸 뭐 하러…"라며 핀잔을 준다든가, 아내가 모처럼 시도한 변신에 "머리를 왜 못살게 구느냐" "안 하던 짓 하면 죽을 때가 온 거라더라"고 반응한다면, 그 부부는 평생 서로 여편네와 두꺼비임을 저주하며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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