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한화 김회장과 경찰의 일처리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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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중 여론은 아주 안 좋다. "김 회장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가진 사람들 다 그런 것 아닙니까" 하며 피식 웃는 택시 운전사의 비아냥 속에선 적대감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그게, 이번 사건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껴야 할 대목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몇 년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뉘고 서로 반목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게 좀 가라앉나 싶더니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지도층이 이래서야 어떻게 선진국이 되느냐"는 지적에 동의한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한다. 적어도 평등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경찰은 사건을 접수한 뒤 한 달이 넘도록 쉬쉬하면서 미적미적해 왔다. 그러던 경찰이 한순간에 180도 변했다. 언론보도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가 철저 수사를 지시하고, 경찰의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이 나온 뒤'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 뒤 경찰 최고위 지도부는 "보고를 못 받았다" "규정대로 했을 뿐이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안간힘을 썼다. 다급한 사정은 알겠지만 참 볼썽사납다. 경찰은 또 지난달 30일에는 "청계산에서 김 회장으로부터 쇠파이프로 맞았다는 피해자 진술을 확보했다"고 공개적으로 브리핑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미리 밝혔고, "김 회장 자택과 회사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겠다"는 발언도 먼저 했다.

사회부 기자를 오래 했지만 이런 수사는 처음 본다. 피해자가 경찰에서 한 발언이 죄다 실시간으로 언론에 알려지고, 사전에 압수수색이 예고되는 게 어디 있는가. 경찰의 행동은 법적으로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 그 자체가 범죄라는 말이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경찰 사정은 알 만하다. 김 회장에 대한 시중 여론도 안 좋다. 그래도 이런 식은 옳지 않다.

경찰은 '술집 종업원들 진술=모두 진실' '김 회장 부자 진술=모두 거짓'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수사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판단이 결과적으로 다 맞는다 해도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수사'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꼬투리를 잡히기에 충분하다.

한번 물어 보자. 경찰이 이러는 게 수사 자체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저희가 처음엔 잘못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합니다"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기자 생활 20년 동안 "저놈 죽여라" 하는 식으로 여론이 비등하고 그에 따라 수사가 춤췄던 사건을 많이 목격했다. 그런 사건일수록 나중에는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다.

김 회장을 비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경찰은 있는 대로 다 수사해 밝혀내고, 사법부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라. 하지만 경찰 수사는 원칙과 기본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온다.

한 가지 더 있다. 누구든 이번 사건을 "그거 봐, 있는 ×들 다 그래" 하는 식으로 몰아가지 말길 바란다. 그런 식의 일반화는 옳지 않다. 인터넷에서 "한화 불매운동하자"는 댓글도 봤다. 하지만 한화의 2만5000여 직원이 '김 회장의 특별한 행동'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여전히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생각을 한다. 당부하노니, 기업인들이여 제발 처신을 잘해 달라. 지금은 1960~70년대가 아니다. 우리 자식들은 앞으로 선진국에서 살게 해야 할 게 아닌가.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