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신이여, 이 하루 헛되게 하지 마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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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장진 감독의 신작 '아들'은 '같기도'한 영화다. 대학로 출신으로, 충무로의 어법과 사뭇 다른 독특한 개성의 작품을 누적해온 이 재주꾼 감독의 영화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설정만 놓고 보면 정통 신파극의 분위기가 짙다. 일단 감독의 전작들과 좀 거리가 있다. 주인공은 강도살인을 저지르고 1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강식(차승원). 하루 동안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휴가를 얻는다. 아들이라고는 해도 세 살 때 헤어진 뒤 처음 만나는 사이다.

조바심과 설렘 속에 강식은 아들 준석(류덕환)의 학교 앞까지 찾아가 기다리지만 둘의 대면은 서먹하고 석연치 않다. 강식의 늙은 어머니(김지영)는 치매에 걸려 아들도, 손자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렇게 쓸쓸하고 안쓰럽게 시작된 이들의 해후가 감정의 물꼬를 터 가는 과정이 천천히 쇠를 달구듯 그려진다.

역시나 장 감독이다. 극적인 흐름이 크게 바뀌는 색다른 장치를 잊지 않고 등장시킨다. 일종의 반전인데, 여느 영화와 달리 막판이 아니라 한층 때 이르게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반전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평하자면 그 효과는 그리 성에 차지 않는다. 두 남자의 슬픈 사연을 심화하려는 의도일 텐데, 반대로 앞서 두 남자가 조심스레 교환한 감정을 일종의 속임수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반전 이후 시간을 거슬러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들려주는 내레이션이 과하다 싶다. 감정의 농밀한 묘사보다 설명에 의존해 영화를 끌어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퍽 아름다운 장면이 등장한다. 짧은 하루가 아쉬워 두 사람은 교도관의 묵인 아래 밤 나들이를 감행한다. 남남처럼 서먹하던 두 남자가 대중탕에 함께 몸을 담그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한데 녹여버리는 모습은 이들처럼 기구한 부자지간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만하다.

슬픈 이야기에도 곧잘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감독다운 대목이다. 천연덕스러운 차승원의 대사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을 발휘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류덕환의 매력을 발견한 관객이라면 냉정하고 조숙해 뵈는 이 아들의 모습 역시 반길 듯하다. 1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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