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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은 캔버스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호 23면

로스 러브그로브가 디자인한 ‘헵(Hep)’. 노란 원형 패턴이 이끄는 율동감은 마치 행진에 구령을 붙인 듯한 느낌을 준다.

백발에 흰 수염 때문에 마치 교주 같은 인상을 풍기는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Ross Lovegrove). 그가 카펫을 디자인했다. 러브그로브는 한때 소니 워크맨부터 테그호이어의 시계, 올림푸스 카메라, 바이오메가의 자전거 등 첨단 제품을 디자인했다. 또 희한한 모습의 티난트(Tynant) 생수병을 디자인해 ‘유기적 디자인’이란 수식어를 달며 세계 디자인사에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1958년 영국에서 태어난 전방위 디자이너 러브그로브는 아직 한국인들에겐 낯설다.

그런 그가 카펫처럼 소프트한 제품에 도전하면서 카펫을 일종의 자유 창작을 위한 캔버스라고 생각했다. 3차원의 제품을 디자인하며 갈고 닦은 영감을 2차원의 그래픽으로 풀어낸 것이다. 마치 자신의 닫혀 있던 세계를 강하게 분출하듯 우리의 시선으로 보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용감한 패턴과 컬러를 시도했다. 시계에서 받은 영감으로 톱니바퀴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소싯적 스팅, 브라이언 페리와 같은 음악 스타를 숭배하며 펑크 로커로 활동할 때의 향수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독일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잡지 기자 출신으로 전시, 가구, 홈 액세서리, 인테리어 디자인을 해온 피터 말리(Peter Maly), 제품 디자이너 ‘스튜디오 베르티젯(Studio Vertijet)’과 크리스찬 베르너(Christian Werner)와 같은 독일 디자이너들도 카펫을 바탕으로 각자의 영감을 표출했다.

집에 옷을 입힌다 해보자. 카펫은 커튼처럼 간편하게 갈아입히고 눈에 띄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템이며, 토털을 지향하는 요즘 인테리어에서 빠질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다. 집 안 표정을 바꾸기 위해 한 폭의 그림을 들여놓듯, 좀 더 저렴한 비용에 디자이너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실용적인 변화를 시도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로스 러브그로브와 3인의 디자이너를 불러모은 것은 독일이 내세우는 카펫 브랜드 ‘얍테피(JAB Teppiche)’이다. ‘디자인 카펫’이란 이름으로 각 디자이너들이 경험한 3차원의 노하우를 2차원적으로 해석해보게 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뉴질랜드산 고급 울을 기본 소재로, 카펫 장인의 손을 거쳐 ‘한 명이 하나의 도구로 카펫 한 장을 완성한다’는 신조 아래 제작됐다. 그렇게 완성된 카펫은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 상을 몇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로스 러브그로브가 디자인한 ‘타임’. 시계의 톱니바퀴를 연상시키는 패턴으로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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