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의 TV 뒤집기]개그쇼에 지친 그대, 콩트에 눈 돌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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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이른바 ‘개그맨 출신 MC’들이 쇼 프로 한 편에 수백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쯤은 나처럼 배 아파 했을 거다. 물론 그들은 유재석처럼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얼굴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흉한 모습으로 변하고, 탁재훈처럼 재치 있는 말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는 재주가 있다. 강호동처럼 데시벨(dB)이 높은 사람은 녹화 두 시간이 끝나면 목이 쉬어버릴 것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남들은 흉내 내지도 못할, 큰 대가를 받아야 할 뛰어난 재주인가. 그런 삐딱한 눈으로 오락프로를 봐온 나에게 신동엽이 ‘헤이헤이헤이-시즌2’에서 보여준 ‘수상한 가정부’나 ‘닥터신’의 변태적 연기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었다. 그의 연기는 코미디의 핵심이 순발력과 재치와 반전 같은 것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캐릭터 표현력과 적재적소의 피지컬한 슬랩스틱 연기, 절제력 있는 표정연기 등이 어우러져야 함을 웅변한다. 그의 짝인 김원희 역시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쳐냄으로써 여성 연기자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한다. 흠, 그래, 참 잘하는구나, 뭔가 다른 면이 있긴 있다 싶다.

‘무릎팍도사’가 너무 떠버려서 소리 높여 외치긴 좀 뭣하지만, ‘황금어장’의 팬이 된 것은 초기의 콩트식 드라마 때문이었다. 유난히 연기를 잘하는 아나운서 김성주와 섹시한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웃기는 옥주현 같은 사람들이 심야오락 프로의 성격에 맞게 아슬아슬하게 선정성의 수위를 넘나들면서 능글맞게 연기를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참신했던 건 ‘개그 콘서트’류의 공개방송 개그쇼에 지쳐 있던 나이 든 사람들에게 숨 고르며 볼 수 있는 드라마형 코미디라는 점이었다.

사실 이 공개방송 개그쇼나 일명 버라이어티 쇼들은 중년들이 여유 있게 보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배타적이다. 방청객들처럼 그곳에 몰입하고 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순간의 재치를 따라가기 숨차고, 다양한 대중문화의 코드를 읽지 못한다면 그들의 패러디와 유행어에 웃음의 리듬을 맞출 수 없다. 게다가 디지털 세대의 엇박자식 유머감각이 없다면 1분 안에 펼쳐지는 반전과 부조리는 이해 불능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본다면 제아무리 인기 있는 코너라 하더라도 그 번잡스러움에 뜨악해질 뿐이었던 콘서트형 개그쇼에 비한다면 이 콩트형 코미디는 한 발짝 떨어져 보다가도 흥미있는 내러티브의 전개와 뛰어난 연기력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보게 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토크쇼와 콩트의 포맷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으로 ‘헤이헤이헤이’와 함께 주목을 받던 ‘황금어장’이 ‘무릎팍도사’를 얻은 대신 제대로 된 콩트를 최근 슬그머니 버린 것은 매우 아쉽다(게다가 ‘황금어장’이 콩트를 포기하고 새롭게 등장시킨 ‘무월관’은 정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 당대 최고의 MC로 명성을 날리는 유재석이 “제대로 된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말한 기사를 보았는데, 정말 그가 벌어들이는 수억원대의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의 ‘코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들일 만한 제대로 된 유재석표 코미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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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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