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만교의 ‘시네마 노트’]애인과 싸운 뒤 딱 보기 좋은 영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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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1면

“형이 미쳤나 봐요. 자신을 닭이라고 생각해요.” 한 소년이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다. “한번 데려와 보지 그러니?” 의사가 권하자, 소년이 난색을 표했다. “안 돼요.” “어째서?” “ 그러면 계란을 못 낳잖아요.”

우디 앨런 감독 1977년 작 ‘애니 홀’

‘애니 홀’에서 감독이자 배우 우디 앨런이 들려주는 우스갯소리다. ‘애니 홀’은 앨런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로, 남녀가 만나 갈등하고 헤어졌다 다시 재회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의 서사를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다루는 방식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무척이나 특이하고 흥미롭다. 연애과정을 달콤하게 다루는 로맨틱 코디미물의 공식과 달리 앨런 특유의 수다와 입담, 논쟁과 형식 실험이 기총 소사 하듯 쉬지 않고 쏟아지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남녀 간의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기보다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호소하는 영화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서로를 정말 사랑하기보다 ‘애니 홀’의 남녀 주인공 못지않게 사랑을 빙자해 자기중심적 투쟁을 벌이는 경우가 더 흔하다.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자기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신 역시 결코 제 정신이 아니면서 상대방을 걱정한다. 사소한 일례로 우리 집에서는 끼니 때마다 할머니와 손녀가 다툰다. 어머니는 과식이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무조건 많이 먹이려고만 드는 반면, 딸아이는 살을 빼야 한다면서 받아먹지 않으려고만 한다. 결코 살찐 체격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랑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거시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가령 사람들은 일이든 술이든 운동이든 무언가에 중독되거나 돈ㆍ외모ㆍ학벌 등에 집착하거나 유행ㆍ통념ㆍ언론ㆍ조직 등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 그러면서 자신을 못난 닭이라며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아주 대단한 닭처럼 으스댄다. 그저 그런 닭이기만 해도 좋을 텐데, 아예 그러한 닭으로서 ‘계란’까지 낳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모든 장소가, 심지어 사랑마저 싸움과 투쟁의 장소로 변한다. 그런데 앨런은 이를 개탄하지만은 않는다. 도리어 조크를 덧붙인다. “부조리하지요. 하지만 계속 사랑할 거예요. 왜냐하면 계란이 필요하니까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계란을 좇는 닭’이지만 자기 자신도 ‘계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인정함으로써 앨런은 사랑을 긍정한다. ‘애니 홀’에서 남녀 주인공의 재회는 이렇게 스스로의 ‘계란’을 인정하면서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애니 홀’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애인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라기보다 애인과 싸우고 혼자 남아 있을 때 보면 좋은 영화다. 상대를 정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미명으로 상대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해 온 사실을 유쾌하게 인정해야 할 순간에 보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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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씨는 1992년 ‘문예중앙’에 시가 당선되고, 1998년 ‘문학동네’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등을 출간했으며, 현재 월악산에서 낮잠과 독서, 창작에 전념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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