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에서 피어난 이탈리아 모던 가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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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3면

몰테니를 위해 디자이너 피에트로 페루시오 라비아니가 만든 ‘프리스타일’. 

장 누벨은 스타 건축가다.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설계에 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공동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장 누벨의 건축은 모더니즘의 다양한 이미지를 실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 방식이 굉장히 절제돼 도무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모더니즘’의 결정체 같은 그가 이탈리아의 명품 가구 업체 몰테니를 위해 디자인한 가구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나무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그라듀아떼(Graduate)’라는 선반, 까르띠에 본부에 놓여 있다는 은색 탁자 ‘레스’를 디자인했다.

‘그라듀아떼’는 벽에 튼튼하게 고정되는 상부 선반과 하부 선반을 고정하는 와이어로 구성돼 있다. 그래도 이 선반은 36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어진 ‘레스’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최소화한 듯 아무 장식이 없다.

몰테니의 디자인에 참여한 건축가는 장 누벨뿐만이 아니다. 건축에서도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도 그중 한 사람이다. 모데나의 ‘성 카탈도 공동묘지’를 설계했던 그는 몰테니를 위해서 간결한 나무 서랍장과 유리 덧문이 달린 금속 책장을 디자인해주었다.

페루시오 라비아니의 또 다른 작품인 ‘하이브리지’. 

베스트셀러 디자이너로 이름 높은 루카 메다는 ‘505’를 만들어냈다. ‘505’는 문ㆍ서랍의 분리가 가능해 사용하는 사람 편의에 따라 배치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모듈 가구. 미적 요소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염두에 두는 배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빛과 물질, 이것이 디자인 현장에서는 가장 중요하다”던 장 누벨, “미학은 언제나 사회를 반영하며 지탱하는 힘이다”라고 했던 마리오 보타. 1930년대 초반부터 세대를 이어오며 가구를 만들어온 몰테니는 이렇게 디자인 요소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예술가적 자부심으로 뭉쳐 있던 디자이너들 덕분에 명품 가구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최고의 가구회사”라는 찬사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그 덕분에 몰테니는 원자재 구입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아우르는 몇 안 되는 가구회사라는 자부심을 지키며 37개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모더니즘에 단단한 뿌리를 박고 있는 몰테니는 사업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디즈니 크루즈 선박들의 인테리어, 전 세계 까르띠에 매장의 가구, 베네치아 라 페니체(La Fenice) 극장의 인테리어 등이 몰테니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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