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다, 바둑판 닮아가는 세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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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3면

바둑을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바둑판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군자의 길은 아니며 휴머니즘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승리’가 유일한 선(善)이자 목적이기에 상대를 속이고 괴멸시키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전쟁은 속임수가 용납된다고 한 손자(孫子)의 얘기를 떠올린다면 바둑은 인생이 아니라 전쟁을 더 많이 닮은 게 틀림없다. 하나 손자병법 식의 책략과 전술을 적용한 기업경영서나 처세술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바둑판=전쟁터=삶의 등식이 그럴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바둑과 삶은 다르다
그러나 바둑과 삶은 다르다. 바둑은 여러 판 둘 수 있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란 사실이 바둑과 인생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준다. 또 바둑판 위에선 어떤 행위도 제약이 없지만 세상엔 법과 도덕의 그물망이 존재한다.

세상이 피 튀기는 바둑판과 다르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연민이 점점 말라가는 세상 곳곳에서 바둑식 메커니즘의 편린이 섬뜩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바둑에선 형세가 불리한 쪽에 엄청난 특권(?)이 부여된다는 점도 삶과 크게 다른 점이다. 불리한 쪽은 무차별적으로 덤비고 떼쓰고 기어올라도 비난받지 않는다. 세상은 평화와 타협을 미덕으로 칭송하지만 바둑을 두다가 불리해진 쪽에게 평화나 타협은 금물이다. 판이 고착되면 그대로 지는 것이기에 끝없이 뒤흔들어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정당한 전술이 된다. 희미한 틈만 보여도 즉각 칼을 뽑아 달려들고, 기회만 있으면 전투로 유도하고, 그것도 저것도 안 되면 옥쇄를 각오하고 돌격한다. 각오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옥쇄한다. 이게 바둑이고 고수의 바둑이다.

유리한 쪽은 그래서 항시 가시방석이다. 부자 몸조심은 바둑에선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상대가 살기등등 한 판 전쟁의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괜히 말려들어 맞붙는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다. 큰 전투가 벌어지면 지금까지의 우세는 무의미해지고 즉각 5 대 5 승부로 변한다. 따라서 죽기살기로 나오는 상대의 거칠고 무엄한 행동에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더라도 조금씩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착실히 모아둔 현찰(실리)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

프로 바둑은 바로 이 같은 불리한 쪽의 저항과 유리한 쪽의 몸조심이 엮어내는 오케스트라다. 거기에 기풍과 기질ㆍ상황이 얽혀 알록달록한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인생은 반복이 없다
삶은 어떤가. 부유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을 지닌 사람 등 소위 사회적 강자를 바둑판 식의 ‘유리한 쪽’이라 규정한다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회적 약자를 ‘불리한 쪽’이라 말할 수 있다.

사회에서는 바둑판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불리한 쪽의 저항과 유리한 쪽의 양보가 나름의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바둑판에선 상상할 수 없는 자발적 도네이션도 있고 약자를 돕기 위한 말과 제도의 성찬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약자들도 옥쇄와 같은 무시무시한 저항은 대개 꿈도 꾸지 않는다. 분노와 탄식, 술좌석의 규탄이 이어지지만 이튿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순종의 행진을 이어간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상이 만약 바둑판이라면 불리한 쪽의 끝없는 저항에 의해 세상은 온통 아수라의 전쟁터로 돌변할 것이다.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 바둑판 위에선 그게 불리한 쪽의 전술이고 선(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어느 정도 패배로 예정되어 있고 역전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다. 왜일까. 인생을 승부나 게임으로 보지 않는 인간의 고매함 탓도 있겠지만 굳이 답을 내린다면 인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옥쇄가 불가한 것이다.

프로기사 중에 신사 같은 외모에 성격도 얌전한 K 8단이 있다. 물론 바둑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동료 프로들이 그에게 별명 아닌 별명을 붙였는데 그게 바로 ‘지나 이기나 무리가 없는 사람’이다.

바둑이 불리하면 덤벼야 하는데 그는 계속 정수로만 둔다. 정수는 법도에 가장 가까운 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정수라는 존재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전성기의 이창호 9단은 “불리하면 강수의 유혹에 빠진다. 강수를 쓰면 자연 승률이 낮아진다. 꾸준히 승률을 높이려면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정수를 좇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 번 옳은 얘기다. 이창호 같은 강자가 취해야 할 최선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정수(正手)와 강수(强手)
하나 이창호는 정수로 계속 이겼고 K 8단은 정수로 계속 졌으니 K 8단의 정수는 도대체 무엇인가. 동료 프로들은 끝까지 무리를 하지 않고 그래서 자신의 적수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K 8단을 은근히 비웃었다. 그는 프로 바둑에서는 약자의 전형에 불과했다.
조훈현 9단이나 이세돌 9단은 유리한 쪽의 양보에 대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드는 드문 사람들이다. 강철의 정신력과 강철 손을 지닌 그들은 부자 몸조심은커녕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싹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위의 두 사람은 실력에 비해 역전패를 잘 당한다. 바둑판 위에선 제아무리 무서운 존재라 하더라도 역습을 당하기 마련이고 그 모든 전투에서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래서 바둑은 통계적으로 역전승이 50%를 넘는다.
창밖을 보니 봄날의 세상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나는 바둑을 좋아하지만 저 아름다운 세상이 피 튀기는 바둑판과 다르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연민이 점점 말라가는 세상 곳곳에서 바둑식 메커니즘의 편린이 섬뜩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바둑은 진짜 인생의 축소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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