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0년의 외교를 준비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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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7면

여러 가지 기대 속에서 21세기를 맞이한 지도 어느새 7년이 흘러버렸다. 2007년 오늘의 시점에서 20년 전을 돌아보면 아련하지만 뜨거웠던 1987년 민주화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의 희생과 아픔이 없었더라면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제2의 국치’라고까지 운위되었던 IMF 관리체제의 쓰라린 기억이 여전히 머리 한 구석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만 보더라도 큰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수반된 아픔 또한 많았기에 한국인들은 잊어버리기도 잘하고 또 쉬이 용서해주기도 한다. 일일이 따지기엔 아마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들춰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망각과 헤픈 관용의 자리를 ‘제도적 기억’과 체계적 준비로 채울 때가 되었다.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 넘기기엔 세계가 너무도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통일,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의 붕괴, 그리고 9ㆍ11 등은 하나같이 돌발적이고 예측되지 않은 변고였으며 이들 사건이 국제체제와 해당 국가들에 미친 영향은 그 크기를 가히 측정키 어려운 정도라 하겠다. 강대국에는 일이 일어난 뒤 이에 대처하는 ‘대증외교’(對症外交)의 선택이 가능하지만 중소국에는 그런 여유를 부리기에 충격 흡수의 공간이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히려 ‘예방외교’가 훨씬 안전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올겨울 대선을 앞둔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2020년을 바라보는 예방외교의 핵심 틀이어야 한다.

2020년께 중국은 단순한 ‘이익상관자’(stakeholder)를 벗어나 국제 정치구도를 미국과 함께 설계하고 재단하는 ‘핵심행위자’(pivotal player)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즉 5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소련이 도맡았던 역할을 중국이 이어받을 것이라는 의미다. 또 역사상 보기 드문 중국과 일본의 동시적 ‘부상’, 한ㆍ미 동맹관계의 전환으로 인한 ‘자력국방’ 부담의 증가, 북한 핵문제 및 북ㆍ미, 북ㆍ일 간 수교 등의 변수를 감안할 때 예방외교의 필요성이 전에 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예방의 핵심에는 연구와 대비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곧 모든 발생 가능한 복합적 상황들을 미리 파악하고 이들이 국가이익에 미칠 영향력의 우선순위와 그 단기 및 중장기적 발생 가능성을 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에는 이들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순서로 대처할 것인지, 또 개별 방안들의 채택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이러한 방안들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책임감 있는 인력의 양성까지를 포괄한다.

향후 1년 남짓의 기간 중 대선과 맞물려 참으로 많은 계획과 방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들이 앞서 언급한 대로 연구와 대비라는 두 가지 핵심 축에 기반한 제언들이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임기를 빼닮은 매 5년 만의 사이클이 아니라 보다 긴 호흡으로 2020년의 국제 정치구도를 읽어가야 할 당위성을 중진국 한국의 외교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구분된 정치담론보다 장기적 국가이익(즉 후임자들도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는 거시이익)을 중심으로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외교전략과 정책의 틀이 차근차근 준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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