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존경받는 「본전 정신」/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해 8월 숨진 일본 혼다(본전) 기연공업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랑)가 남긴 유산이 혼다의 기업규모에 비해 너무 적어 화제가 되고있다.
일본 세무서가 최근 발표한 그의 유산은 1백84억엔으로 혼다 전체 주식의 1%가 채 안되는 주식과 자택이 전부다.
혼다기연공업은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전세계에 2백25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혼다기연공업 1개사만의 매출액이 2조9천억엔이다. 경상이익이 6백69억엔,당기순이익이 3백26억엔이나 된다. 이정도 되면 유산도 엄청날 것이었다.
그러나 세무서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업규모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숨진뒤에도 일본사회가 다시 한번 그의 인품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 것이다.
그는 『혼다는 혼다가의 것이 아니다』며 아들에게의 대물림을 거부했다.
일본에서 대물림은 하나의 미덕이다.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대물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개인의 것으로 해서는 안된다며 일가친척이 회사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자나 깨나 기술개발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는 마쓰시타(송하)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송하달지조)와 함께 2차대전후 일본에서 가장 칭송받는 기업인이었다.
그는 일본 재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동차 수리공으로 들어가 기술을 익히고 오토바이로 출발해 세계를 석권한뒤 자동차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시장지향성을 지닌 개발기술자로,기계에 관한 사상을 지닌 생산기술자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영자로서는 그다지 자질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49년 후지사와 다케오(승택무부)를 부사장으로 영입,판매와 자금 일체를 맡겼다. 자신은 오로지 기술개발에만 매달렸다. 그의 이같은 결단이 혼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73년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며 45세의 젊은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후지사와와 함께 최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66세로 한창 일할 나이였다.
혼다의 왼손은 상처투성이었다고 한다. 엄지손가락은 깨져 형태가 없고 새끼손톱은 빠지고 없는 등…. 망치를 들고 수 많은 부속품을 개발하다 다친 때문이다. 기술자가 우대받는 사회가 되어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지론을 지닌 그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고 유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때문에 그의 빈소는 가족들만 쓸쓸히 지켜야 했다.
「남의 흉내를 내지말고,관공서에 의지하지 말고,세계를 겨냥하라」는 혼다이즘을 우리나라에서도 배울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