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건강식품으로 뜨는 '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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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춘궁기(보릿고개)의 고마운 곡식이었다. 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60년대엔 1인당 연간 보리 소비량이 40㎏에 달했다. 이는 요즘 한 사람이 한 해에 먹는 쌀 소비량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최근 건강 열풍과 더불어 한때 우리 식탁에서 사라졌던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보리 빵.보리 피자.보리 라면.보리 음료.보리 화장품 등 용도가 계속 확대 중이다. 그러나 보리의 누적 재고량은 올해 말까지 22만t에 이를 전망.'맛이 없다'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이 보리를 외면하는 이유다.

◇쾌변을 돕는다=보리는 변통(便通)에 가장 좋은 곡식이다. 삼성서울병원 조영연 영양파트장은 "보리는 장(腸)의 연동운동을 도와 변비를 없애주는 식이섬유가 통보리 21%, 보리쌀 11%에 이를 정도로 풍부하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백미는 1%, 식빵은 4%에 불과하다.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잦은 것도 바로 이 식이섬유 때문이다.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이은희 영양사는 "쌀.보리를 적당히 섞은 밥에 신선한 채소.과일로 섬유소를 높인 전통식단은 대장암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권한다.

◇한방에선 소화제로=한방에선 맥아(麥芽.보리를 발아시켜 햇볕에 말린 것)를 약으로 쓴다. 분당차한방병원 김상우 부원장은 "보리는 위를 편하게 하고 소화작용을 돕기 때문에 예부터 식체나 설사병에 쓰였다"고 말한다. 아이가 젖을 먹고 체했을 때도 효과적이다. 또 맥아는 식혜의 재료이므로 식사 후 식혜를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

중국의 의서인 '본초강목'에도 '보리는 오장(五臟)을 보(補)하고 기(氣)를 내리며, 식체를 없애고 식욕을 증진시킨다'고 기술돼 있다. 중국에선 열을 빨아들이는 곡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위가 차서 설사가 잦은 사람에겐 보리를 먹이지 않는다.

◇다이어트에 효과적=보리밥(쌀 7, 보리 3의 비율일 경우)의 열량은 결코 적지 않다.백미로 지은 쌀밥은 1백g당 1백48㎉, 보리밥은 1백40㎉로 별 차이가 없다.

강동성심병원 영양과 이한수 계장은 "보리밥은 꼭꼭 씹어 먹어야 하므로 쌀밥을 먹을 때에 비해 식사시간이 길어진다"며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스태미나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동의보감'에서 보리는 오곡지장(五穀之長)으로 표현된다. 높은 에너지를 낸다는 것. 또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은 체력을 높이기 위해 보리를 먹었다. 검투사는 '보리를 먹는 사람'으로 불렸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동물실험을 보자.

쌀만 먹인 쥐와 쌀.보리를 혼식한 쥐를 회전 벨트 위에서 달리게 했다. 이 결과 쌀만 먹인 쥐는 54분간 6백80m를 달린 반면 보리.쌀을 혼식한 쥐는 66분 동안 8백25m를 달렸다.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장이 무거워지고 신장의 비타민C 소모량이 증가하는데 혼식한 쥐가 더 오래, 멀리 달리고도 신장의 무게 변화와 비타민C 소모량이 적었다.

◇당뇨.심장병을 예방=당뇨병의 한방명은 소갈(消渴)이다. 배에 열이 쌓여 생긴 병이다. 이를 근거로 싸늘한 성질인 보리.메밀이 당뇨병 예방.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보리는 혈당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것을 막아준다. 보리의 혈당지수는 50~60으로 백미의 70~90보다 낮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데도 유용하다. 미국 몬태나주립대 로즈마리 뉴먼교수는 보릿가루로 만든 머핀.빵.케이크를 6주간 먹였더니(매일 3회)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15%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식사섬유의 일종인 베타글루칸이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합성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 베타글루칸은 곡류 중 보리에 가장 많다. 쌀의 50배, 밀의 7배다.

한편 보리는 손으로 만져서 부드럽게 느껴지고, 담황색으로 광택이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알은 고르고 둥그스름하며 통통한 것이 좋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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