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발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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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모스크바의 중심가에 있는 스웰도르프 광장을 러시아 사람들은 「극장광장」이라고 부른다. 스웰도르프 광장에는 두개의 극장이 사이좋게 나란히 있다. 하나는 유명한 볼쇼이발레의 전용극장이고,다른 하나는 전통있는 러시아 리얼리즘 연극의 산실인 말리극장이다. 러시아어로 「볼쇼이」는 크고 위대하고 찬란한 것을 의미하는데 반해 「말리」는 작고 아담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극장이 크고 작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 위대하고 찬란한 볼쇼이 발레가 두번째 한국에 온다. 이번 공연작품은 『스파르타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 2년전 첫번째 한국 공연에서 선보였던 『백조의 호수』와 『지젤』이 서구 전통발레의 보편적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볼쇼이」라는 보석함에 담아 그 빛을 더욱 찬란하게 만든 것이라면,이번의 『스파르타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볼쇼이가 독자적으로 원석을 캐내고 다듬은 그야말로 볼쇼이의 「특허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의 노예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자유와 사랑을 위해 싸우다 죽는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댄스 드라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과거 대부분의 대표적 발레 레퍼터리가 그렇듯이 왕자와 공주,귀족들이 나와 달콤한 사랑이야기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검투사와 노예들이 등장,삶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역동적인 힘과 비극미가 무대를 압도한다. 그러나 통치자 크라수스의 애첩 에기나의 육감적인 춤,노예로 팔린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프리기아의 서정적인 춤은 이 발레를 한층 감동으로 이끌고 있다. 볼쇼이의 예술감독 유리고로비치가 안무한 『스파르타쿠스』의 매력은 한마디로 화려한 발레테크닉속에 스며든 남성적인 다이내믹한 율동이라고 할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종래의 발레와는 다르다. 모든 사건을 줄거리 전개에 집착하지 않고 주인공,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수한 사랑에만 초점을 맞춰 상징적 혹은 율동적으로 대조되는 춤으로 이끌어 나간다. 마지막에 로미오가 줄리엣과 만나 이별을 나누는 장면을 삽입,비극성을 강조한 것도 볼쇼이만의 특징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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