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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의 사장나 송수권<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얼마 전 이곳 광주 MBC 시청자 위원회 회의에 위원의 한사람으로 참석한 일이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한번씩 열리는 회의다. 지역 공간의 삶을 밝히기 위해 자체의 프로그램을 반성하고 검토해 가는 과정에서 일전「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무등산을 가린다」고 고발한 보도프로 얘기가 나왔다. 생명력 있는 뉴스라는 점에서 위원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쏟아졌다.
무등산은 시민 전체의 산이지 아파트 단지 사람들만 보라는 산이 아니다. 도시환경의 조 경에서도 그렇고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장하는 면이 있어 고층아파트는 아무래도 모양세가 좋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십년 저쪽, 무등산 일주도로를 낸다고 당국에서 산중턱을 벌겋게 갈라놓았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역의 삶을 지켜 가는 시민의식도 이쯤 성숙했구나 싶어 눈물이날 지경으로 고마웠다.
나는 이 위원회에서 어떤 발언을 할까하다 그만 두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꿈꾸는 「사장나무」한 그루에 관한 것이다. 광주에서 오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금 금남로의 도청 앞 광장과 이웃한 중앙교회 건물이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 큰 사장나무가 있었다. 그것이 어느 땐가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베어져 넘어진 것이다. 그 미루나무 잎새 속에서 매미가 울었다. 그리고 빨간 단풍이 졌다.
지금 중앙교회 앞에 그 덩치 큰 사장나무가 서 있다면 어떨까. 사실 이날의 모임에서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5·18의 총탄이 그 나무둥치에 박혔을 테고, 조무라기 몇은 그 나뭇가지에 올라가 연일 만원사례로 터져 넘쳤던 그 광장의 운집한 시민들 모습을 내려보다 총탄에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우리 민주언론의 광장은 이 사장나무 아래가 아니었던가. 온「마을사람」들이 패륜아가 나오면 그 광장에서 덕석말이·조리돌림도, 더 심하면 파문도 시키지 않았던가. 이것이 마을정신인데 오늘 우리 마을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시의 심장부에 서 있는 사장나무, 그 광장의 사장나무가 지금도 버티고 서있다면 우리 고유의 당산나무로 5·18 당제가 여기서 벌어져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사장나무 사진 한 장을 찾아내 다음 뉴스시간에 안방에 비춰달라고 위원회에 발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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