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2부] 즐거운 집(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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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나중에 생각하니까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막상 그가 그렇게 묻자, 약간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아니지요 …그야 우리 아빠랑 이혼한 걸…."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너희 아빠는 엄마랑 이혼을 안 했던 거야?"

머리칼이 돌돌 말려드는 것처럼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그게 …그러니까 우리 아빠랑 우리 엄마가 이혼을 했죠."

"에이, 난 또 너희 아빠는 너희 엄마랑 이혼을 안 하고 너희 엄마 혼자만 아빠랑 이혼한 줄 알았지…."

이게 무슨 말인지 싶었다. 머릿속이 뽀글뽀글 꼬이는 거 같았다.

"위녕, 내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만, 그건 아빠가 뭘 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구나. 너희 엄마가 코끼리 하마 거북이랑 이혼했다면 그건 너희 아빠가 엄마를 비난해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니잖아."

그는 뭐 별일도 아니잖아, 하는 듯이 시가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맥주 탓인지 갑자기 머리가 띵해 왔다. 나는 눈만 깜빡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참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 신문사 동기를 만나 내가 물었지, 너 저번에 쓴 '주부들 채팅, 바람 심각하다' 그게 대체 무슨 기사냐, 하고 말이야. 주부들이 코끼리 하마 거북이랑 채팅을 해서 가정의 위기가 생긴다면 그건 여자들이 비난받아야 되겠지, 그런데 주부들이 코끼리 하마 거북이랑 바람이 나는 게 아니잖아…. 대체 주부들 바람 심각하다가 무슨 소린지 원."

이야기는 심각하게 시작되었으나 나는 그만 또 웃고 말았다.

"아저씨는 여자들을 참 아끼나 봐요. 그런 걸 페미니스트라고 하던가요?"

그는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약간 열을 내어 말을 시작했다.

"아니 뭐 그런 건 모르겠고 말이야. 우리 남자들이 코끼리 하마 거북이랑 함께 이 세상을 산다면 여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우리는 코끼리 하마 거북이랑 사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함께 살아야 하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겠니…. 내 말은 그거지 뭐. 뭐가 이익인 줄을 알아야 하는 거야."

갑자기 후텁지근한 공기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이제껏 마음 깊숙이 나도 모르게 엄마랑 이혼 안 한 아빠를 남겨두고 엄마 혼자 아빠랑 이혼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아, 이게 말이 되는지, 그런데 왜 나는 이 질문에 이토록 당황하고 있는 것인지.

그는 내 표정을 잠깐 살피더니 이내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전에 네가 좋아한다던 그 작가, 이 동네 살던데?"

"네?" 하고 내가 묻자, 그가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편의점에서 술을 사려고 하다가 봤어. 내가 좋아하는 잭 다니엘이 항상 떨어지길래 내가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그 작가가 다 사간다고 하더라구. 그래 저번에는 내가 먼저 사와버렸지, 그런데 그 작가가 알코올 중독인지 요즘 들어 부쩍 매일같이 그 술을 사간다고 하더구나…."

세상을 알게 된 지 벌써 18년이나 되어가지만 삶은 정말 이상한 것이다. 18년이나 이 세상에서 지냈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이곳은 정말 무언가 신비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게 틀림이 없을 거 같다. 나는 서점 아저씨에게 실은 그 여자가 우리 엄마거든요,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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