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쥔 러시아 국제금융 큰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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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유가로 막대한 오일달러를 축적한 러시아가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5일 러시아가 외국기업 지분 인수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일 수출세로 조성해 온 1000억 달러(약 93조원) 이상의 안정화 기금 가운데 일부를 해외 투자로 돌린다는 것이다.

◆ 오일달러를 해외 투자로=이 같은 구상은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안정화 기금 분리 운용 계획이 지난주 의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오일 달러 급락 사태에 대비해 2004년부터 적립해 오고 있는 안정화 기금은 현재 108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쿠드린 재무장관은 안정화 기금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를 유가 급락에 대비한 비축 자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수익이 높은 국내외 투자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제안했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 공격적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240억 달러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안정화 기금 외에도 3560억 달러의 외환 보유액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3위 규모다. 불과 10년 전인 1998년 대외채무지불정지(디폴트)를 선언한 나라라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계 시장조사 기관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러시아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홍콩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이어 셋째로 해외에 많은 돈을 투자한 나라로 꼽혔다. 지금까지 해외에 투자한 자금이 120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투자액만 130억 달러로 2002년에 비해 13배 증가했다. 고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원유와 금속 등 원자재 수출로 두툼해진 돈 주머니를 해외 투자에 풀고 있는 것이다.

◆ 줄 이은 외국 기업 인수=지난해 러시아 최대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소유의 철강회사 예브라즈그룹은 미국 오리건스틸을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러시아 국영은행 브네쉬토르그방크도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 제조업체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에 갖고 있는 지분을 늘렸다. 러시아 알루미늄 1, 2위 업체인 루살과 수알은 4월 스위스 원자재 회사 글렌코어를 36억 달러에 인수해 합병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세계 최대 알루미늄 기업으로 거듭났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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