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독으로 주가 올린「우먼파워」|"섬세…완벽 추구에 남자들도 놀라요"|첫 아파트 공사장의 두 고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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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남자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속칭「노가다판」건축공사 현장에 전문대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맹렬 여성들이 뛰어들어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현대건설 서울 봉천1구역 재개발지역 건설현장 감독인 고지연(23)·고명희(22)양이 주인공들.
두 고양은 현장에서 아파트공사를 진두 지휘, 완공시킨 국내 최초의 여성 건축기사들이다.
이들이 험악한(?) 건설현장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6월.
당시 현대건설 주택사업부는 3D기피현상으로 떠오른 건설인력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인력 채용을 추진했다. 회사와 안면이 있는 인천전문대 건축학과 허진삼 교수가 추천한 10명의 졸업 예정자들 가운데 두 차례의 면접을 거쳐 고양 등 2명을 수습사원으로 뽑아 곧바로 봉천동 현장에 배치했다.
고지연양은『여고 재학시절 건축관련 인테리어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는데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오빠의 권유로 건설회사 입사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체력이 달려 몸살을 앓는 등 고생했지만 여성도 건설분야에 한몫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며 뛰어다녔다는「악바리」.
동료 고명희양은『생리적으로 경리·비서직 등 상투적인 일을 싫어해 생각 끝에 성격에 맞는 건설직을 택했다』며『처음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새로 익힌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언젠가 자영업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털어놨다.
이들의 취업과정은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막상 여성 건축기사 채용문제가 제기되자 간부 전원이 반대했었다』고 맨 처음 여성기사 채용 아이디어를 낸 현대건설 주택사업부 유영무 상무이사(56)는 말한다.
결국 갑론을박 끝에「꼼꼼하고 책임감 강한 여성들에게 한번 기회를 주자」고 강력히 주장한 끝에 채용이 성사됐지만『한달이나 가겠느냐』는 비아냥이 뒤따랐다.
우려했던 상황은 여기사들이 배치된 첫날부터 발생했다. 새파란(?) 처녀들이 건설현장에 나타나자 작업 반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인부가『우리를 무시한다』며 작업거부 태세를 보였다. 유 상무를 비롯, 강상훈 대리 등 현장간부들이 나서서 설득한 끝에 겨우 무마될 수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 여기사들은 각오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익숙하지 않은 헬밋을 쓰고 공사장 주변을 누비며 스케줄대로 공정을 진척시키기 위해 인부들을 따라다니며 다그쳤다
건축중인 아파트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초공사부터 골조·마감까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완벽주의로 설계도면과 실제 현장과의 차이를 정확히 짚어내 모두를 놀라게 하며 당초의 우려를 하나씩 깨나갔다.
대충대충 일하며 적당주의에 젖어 있던 남자직원들이 무색해졌다. 여기사들이 인정받기 시작하자 한때『융통성이 없다』며 투덜대던 현장 인부들도 호의적으로 태도가 바뀌고 열성을 보이기 시작, 공사장 분위기·작업 능률 모두가 좋아졌다.
1차 두 고양이 기대 이상 성과를 보이자 회사측은 고양의 동기생인 진준녀양(23)을 한달 뒤 추가로 채용, 현재 국내에 현장취업 여성건축기사는 모두 3명.
입주가 완료된 봉천동 26개동 가운데 이들 여성기사들의 지휘아래 완공된 아파트는 24∼26동 등 모두 6동에 이른다.
현대 측의 성공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D사·S사 등 경쟁사들도 여성기사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학 동기동창인 이들「3총사」는 올 3월까지 함께 근무했으나 인천이 고향인 진양이 지난달 부천시 중동으로 발령 받아 헤어졌다. 두 고양만 봉천동 재개발 현장에 남아 현재「하자업무상담」을 맡고있다. <봉화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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