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인… 「러시아판 화성사건」마감(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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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년간 53차례 범행 「숲속의 도살자」50대 검거/수사중 전과자를 진범으로 단정 잘못처형도
러시아남부 로스토프에서는 요즘 「러시아판 화성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로스토프는 물론 러시아 전역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년동안 최소 53차례의 강간·토막살인을 자행하다 붙잡힌 범인이 1년6개월 가까운 극비 마무리 수사 끝에 최근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주로 국민학생 또래의 소년·소녀들을 제물삼아 학부모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범인은 뜻밖에도 두 자녀와 손자들까지 둔 어엿한 중년 가장인데다 교사 출신이어서 러시아 사회를 더욱 술렁이게 하고있다. 대부분의 시체들이 철로옆 숲속에서 발견돼 러시아 언론에 「숲속의 도살자」로 불렸던 범인 안드레이 치카틸로(56)는 확인된 것만도 지난 78년부터 90년 11월 체포될 때까지 35명의 소년·소녀 등 53명을 살해했다. 그는 간간이 로스토프 일대를 벗어나 모스크바·중앙아시아 등 구소련 곳곳을 누비며 일곱차례 원정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성폭행 당하고 온몸을 난도질 당했으며 토막났다. 마구 물어뜯기고 눈·혀가 뽑히고 국부·젖가슴이 도려내진 시체도 수두룩했다. 시간도 곁들여졌다. 그래서 사건수사를 맡았던 빅토르 부라코프 로스토프경찰국 성범죄 수사부장은 흉악범치고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의 치카틸로를 붙잡고 나서 『8년간 찾아헤맨 범인이 고작 이작자란 말인가』라며 오히려 허탈해 했을 정도다.
평소엔 멀쩡한 그가 왜 그토록 잔인한 사람 사냥에 탐닉하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수사당국은 다만 2차대전중 독일군 포로였던 그의 아버지가 귀국후 반역자 취급을 받고,형이 30년대에 유괴·살해된데 입은 충격과 청년시절 수차례 쓰라린 실연을 당하면서 쌓인 상처가 뒤늦게 발작적으로 곪아 터진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치카틸로는 『가족과 일밖에 모르다가도 난데없이 악마에 홀린 것처럼 통제불능의 딴사람이 돼버리곤 했다』고 변명하는가 하면 『성관계를 가진 여자들이 나의 성적 무능을 비웃는 바람에 홧김에 그랬다』는 등 횡설수설 하고있다.
한편 이 사건은 수사면에서도 갖가지 기록을 남겼다. 구소련 각지에서 차출된 베테랑 수사전문가 55명이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4백여명의 수사관들이 수시로 동원됐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만도 2만5천여명. 덕분에 95명의 살인범과 3백여명의 범법자들이 덤으로 검거됐다. 특히 성범죄자들에 대한 집중수사로 수천명의 성도착증 환자·동성연애자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상 실수도 컸다. 지난 78년 로스토프에서 아홉살난 한 소녀가 피살체로 발견되자 경찰은 우연히 그 부근에 있었던 강간 살인전과자를 진범으로 몰아 처형했으나 이 소녀는 치카틸로의 「첫 범죄」였다. 경찰은 더욱이 지난 84년 범행을 마치고 나오는 치카틸로를 붙잡고도 그가 끝까지 부인한데다 시체에서 채취된 범인의 혈혼마저 감정결과 그의 것과 달라 풀어주고 말았다. 이점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치카틸로는 결국 지난 90년 11월6일 마지막 재물이 된 한소년을 데리고 으슥한 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눈여겨 본 시민의 제보로 이 사건 나흘후 검거됐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로스토프 분실 임시감방에 갇혀있는 그는 이제 바로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는 죽음의 사자를 기다리고 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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