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볼쇼이의『로미오와 줄리엣』|본사초청=내달 25일∼30일 세종문화회관|김형태<시인·무용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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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로 사랑하는 몬태규 가의 아들 로미오, 그리고 캐플릿 가의 딸 줄리엣. 견원지간인 부모들 때문에 맺을 수 없는 사망의 비극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볼쇼이발레단은 또 하나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으로, 차이코프스키의『환상적 서곡』으로도 작곡되었으나 볼쇼이 발레와 어우러진 음악은 1940년에 초연 된 프로 코피예프의 발레곡.
발레『로미오와 줄리엣』은 그후 존 크랑코, 케네스 맥밀런, 베자르가 각각 안무했는데 1979년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3년 전 볼쇼이발레단과 함께 내한했던 그리고로비치는 볼쇼이발레단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사랑의 전설』 『이반 뇌제(뇌제)』『석화』『지젤』등 수많은 명작들을 안무했다.
그리고로비치 안무의 특징은 발레에 있어서 고전적 마임 등을 과감히 배제하고 다이내믹한 극적 활력을 불어넣는데 있다. 여성위주의 발레에서 남성상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도 그의 공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구 소련에서 태어난 동향의 안무가로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었던 조지 밸런친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것은 1989년이었는데 주역은 지금 영국 로열발레단 객원 무용수로 있는 무카메토프와 그리고로비치의 아내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였다. 『황금시대』·『이반 뇌제』등에서도 두 사람은 경이적 상대역이었다.
전 3막의『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남성무용수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1막 견원지간인 양쪽 가문의 대결 장면이 그렇고, 2막에서 결투로 목숨을 잃는 대리인들의 솔로의 중량과 연기가 그러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은 줄리엣 침실에서 두 연인이 춤추는 2인 무(그랑 파 드 되)일 것이다. 2인 무는 1막 두 사람의 만남 때도, 2막 사육제가 끝난 뒤 비밀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나온다. 그리고로비치 안무는 줄리엣 발끝이 땅에 닿지 않는 고난도 공중회전 반복으로 일관한다. 여체를 남성무용수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등에 싣고 보행하는 사랑의 산책장면 등이 그런 예. 케네스 맥밀런 안무 때 알렉산드라 페리, 웨인 이글링이 춤춘 2인 무는 정적인 것에 속한다고나 할까. 그에 비해 볼쇼이의 2인 무는 동적이며 그 안에 미묘한 부드러움이 사탕의 교감을 넘치게 한다.
발레에서 막간 여흥은 보통 2막에서 진행되는데『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줄리엣이 자살소동을 벌인 후 3막에 삽입시킨 것도 그리고로비치다운 해석이다. 로미오가 줄리엣 죽음을 비통해하다 자살한 뒤 줄리엣이 달려와 죽음에 동반한다. 그에 앞서 줄리엣을 에워싼 죽음의 혼령들 춤은 아다지오리듬에 풀리고 다시 감기는 비가풍으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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