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관중 내쫓은 주말 야구 시간 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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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요일 오후 9시를 훌쩍 넘긴 연장 11회에도 승부가 나지 않자 조호섭(30.인라인스케이트 강사)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집이 수원인데 경기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차가 끊겨 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곱 살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회사원 이창환(42)씨는 "내가 내일 출근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는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에 시작한 경기는 5시간 만인 10시에 끝났다. 만원에 가까운 2만5339명이 찾은 관중석은 연장전이 계속되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만3715명이 찾은 부산 사직구장도 롯데와 현대가 12회 연장전을 벌이자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올 초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주말 경기를 오후 5시에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까지 주말 경기는 오후 2시, 여름철인 7, 8월에만 오후 5시 시작이었다. 관중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다음날 한 주를 시작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에 경기장을 찾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비판이 많다. "요즘은 일교차가 커 밤이 되니 너무 추웠다"(박오준.25.대학생)는 관중도 있었다.

주말이라도 지상파 방송(지역민방 포함)이 생중계하는 경기는 오후 2시에 시작한다. 이 때문에 경기시간을 혼동해 헛걸음한 사람도 있었다.

올해 프로야구는 수도권과 부산 연고 팀의 강세로 지난해보다 관중이 21% 늘었다. 그러나 주말 관중의 불만을 방치하는 것은 불 붙은 흥행에 KBO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이날 잠실야구장을 찾은 대학생 국송림(25)씨는 "지난주엔 축구장에 갔는데 오후 5시에 끝나 밥 먹고 맥주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니 딱 좋았다. 오늘은 끝나자마자 들어가 자야 한다"고 불평했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주말 경기시간 변경이) 별로 잘한 결정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오후 2시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충형.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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