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 산길 오르니 끝없는 분지-중국 청성공원 3,000km 횡단 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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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0월 3일, 오늘의 목적지는 커얼무(격이목), 이곳에서 커얼무까지 약8백km, 하루 행정으로는 좀 먼길이지만 문성공주의 애환이 서린 길이기도 하다. 티베트 인들에게 문성공주를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을 정도로 문성공주는 티베트 인들에게는 신앙의 주체가 되는 불교를 전래한 사람으로 숭앙받고 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첩첩 산길을 돌아 오르더니 고갯마루 턱에 섰다. 이곳이 바로 그 옛날 문성공주가 울며 넘던 일월산이라고 한다.
그 고사를 살펴보면 당나라 태종은 장인들과의 평화를 위하여 자기 딸 문성공주를 티베트의 왕 송찬캄보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장안에서 티베트의 라사까지는 3천km가 넘는 멀고도 험한 길이라 공주는 신하와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환송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장안을 떠났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쳐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으면서 가까스로 일월산 산정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니 일월산을 분수령으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수목도 있고 인가도 있었으나 한쪽은 백설에 덮인 산이 첩첩하고 눈발이 분분하게 날리는 황량하고 척박한 곳이라 갈 길을 생각하니 막막하고 마음이 서글퍼졌다. 공주는 고향이 그리워 슬픈 마음을 누를 길 없어 부황을 뵙기를 청했다.
이때 당태종은 공주가 고향을 생각하고 서장으로 가기를 싫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공주의 근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특별히 보경 하나를 만들어 일월산으로 보내면서 만약 공주가 나를 보고싶을 때 이 보경을 열고 보면 거울 속에서 부모와 고향산천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공주가 하루는 집 생각이 몹시 나 거울을 열고 보니 그리던 부모와 장안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처량한 모습만 보였다고 한다. 부황의 얄팍한 속임수를 깨달은 공주는 화가 치밀어 보경을 땅에 내던져 깨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생각을 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티베트로 떠났다고 한다. 그후 공주는 송찬캄보의 아내로 충실했으며 더욱이 불교를 티베트에 전한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공주의 불교전래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라사의 팔각가 입구에 대소사(조캉사원)라는 큰절을 지었다. 지금도 티베트 인들은 대소사를 신성시하고 있으며 연중 참배 객들은 오체투지례란 특이한 기도를 올리며 대소사를 방문하고 있다.
터베트 인들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의 혼은 죽지 않고 그 혼은 다른 생물이나 다른 인간으로 환생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오체투지례를 10만 번하면 죽어서 다시 멋진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3개월을 계속하고 노인들은 8개월간 정성을 드린다.
이와 같이 티베트 종교는 사람의 생활과 인생을 바꾸어 놓고있었다.
나는 라사 3백 리 밖에서 우연치 어린 두 소녀가 보따리를 지고 앞뒤에 서서 오체투지례를 하면서 대소사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포복하듯 엎드렸다 일어나서『옴마니 반헤음』하면서 합장기도하고 다시 자기 키만큼 걸어나가 땅에 엎드리며 고행하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3백 리를 가자면 지금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손바닥이 얼어터지고 무릎이 깨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내세의 소망을 안고 고행하는 모습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생각게 했다.
일월산을 내려오니 이번에는 일망무제한 차이다 (시달) 분지가 전개되었다. 분지의 크기가 무려 6만 평방m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끝도 없는 망망 대 고원이다. 그 황량한 고원 가운데를 도로가 7백km 일직선으로 뻗어있으니 또 한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차이다 분지를 달려 오후7시에 목적지인 커얼무에 닿았다. 커얼무는 인구 12만 명의 신흥공업도시로 유목민들의 필수품인 전막생산지로이름이 나 있다. 10월 4일은 곤륜산을 넘어 타타허(범범하)로 가는 날이다. 이곳에서 타타허까지는 6백km, 도로는 팬 곳이 많아 차체가 몹시 흔들렸다.
청해고원의 늦가을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빙설에 덮인 산 황토산, 그리고 적암산(산 전체가 붉은 암석이어서 적암산이라고 이름 붙었음)이 있고 고원은 이미 누런 초원으로 변해 있었다. 넓은 초원에는 유목민들이「쿠」라고 부르는 흰 천막이 군데군데 산재해 있고 양과 야크 무리가 황색초원을 수놓은 듯 점철하고 있다. 시들어버린 초원에 희귀한 꽃이 피어있어 무슨 꽃인지 물어보니 장어로 노란 꽃은 감국화라고 하고 하나는 만두같이 생겼다하여 만토라고 했다. 정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마치 지구의 최후 오지를 찾아온 느낌이었다.
풍광은 너무나 수려하여 소설에 나오는「샹그리라」를 연상케 하였다. 이곳이야말로 불로사생의 도원경 같은 선경이 아닐 수 없었다.
도중 납적대라는 곳에 유명한 광천이 있다 기에 잠시 들러보았다. 곤륜산의 눈 녹은 물이라 해서 곤륜천이라고도 한다. 샘의 크기는 폭1·6m, 깊이1m가량 되는데 샘물이 모래 구덩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샘물은 옥같이 투명하고 맑았으며 이 물이 서역제일의 광전이라고 한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고 깨끗한 물맛이 갈증을 풀어주었다.
주민들의 말로는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과 미량의 원소가 함유되어 있어 장수천이라 불린다고 한다. 또한 수량이 풍부해 앞으로 개발해 곳곳에 생수로 공급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장수천을 떠나면서부터는 지형이 가파라 지더니 차는 해발 4천7백20m의 곤륜산 영마루에 이르렀다. 차에서 내려 돌아보니 크고 작은 산들이 아득치 엎드려 있었고 그 중에 옥허산(6천5백m)은 은으로 장식한 여인이 우뚝 서있는 듯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도에 적응할 사이 없이 갑자기 4천7백m의 높은 곳으로 올라오니 대부분의 대원들에게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악의 두통과 구토증이 일어나면서 얼굴이 붓고 새파랗게 질렸다. 고산병은 빨리 낮은 지대로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지만 청장고원 한복판에서 진퇴양난으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라사까지는 사흘이 걸린다. 라사 호텔까지만 참고 견뎌내자고 격려했다. 그러나 몇 사람은 이미 탈진상태에 빠져 응급조치로 우황청심환을 먹기도 했고 등반할 때 쓰려고 했던 용량 7분 짜리 산소 통을 계속 사용하며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등 극심한 고산증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박철암<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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