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한국영화|"영화인 인명사전" 잇단 격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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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야사…』 연재를 끝내며
지난 2년간『야사 한국영화』를 취재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모 원로감독을 인터뷰하다 지금은 작고한 유명한 모 배우의 얘기가 나왔다. 그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은 배우였는데 어쩌다 취중(?)에 동료 한 사람을 과실 치사케 한 사건이 있었다.
과실치사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다. 마땅히 기록돼야할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본인도 작고한마당에 그러한 불상사를 꼬치꼬치 캐내 새삼스럽게 들춰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생각 끝에 그 사실은 쓰지 않았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지만 개인에 얽힌 에피소드 중 어딘가 명랑하지 못한 일들은 되도록 쓰지 않는 방향으로 나갔다.
개인의 실상을 보다 깊이 관찰한다는 견지에서도 그것이 별로 보탬이 안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혹시 저널리즘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암시하는 항의전화도 있었고, 워드프로세서로 기술한 이른바 내용증명이라는 것을 등기로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이때 필자가 생각한 것은 한국의 소위 유명인사들이란 자신에 대한 비판에 익숙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아마 오랜 독재치하에서 독재자가 자신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단호치 거부하고 반발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온 습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유명인사들은 이른바 유명세라는 개념을 충분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유명 영화인은 도대체 자신에 대해 써지는 것 자체를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와 개인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저널리즘 자체에 필요이상의 불신증을 보였다. 이것은 그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특히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녀의 기명으로 나간 어떤 간행물의 연재물도 사실은 그녀가 쓴 것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호기심의 자극을 통한 흥미 위주기사의 범람에서 파생된 폐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상의 현상은 지극히 제한된 극소수의 반응이었고 대다수는 진심으로 환영해주었다.
어떤 영화인은 객관화된 자신을 볼 수 있어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자기를 새로 정립해볼 계기가 되었다고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또 어떤 영화인은 이것이 일종의 영화인 인명사전 같은 것이 될 터이니 오래 살며 좀더 많이 쓰라는 당부를 해오기도 했다.
사실 한참 쓰다보니까 어떤 기록적 가치가 생기기 시작했던지『가능한대로 공명정대한 자세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당초의 목표는 필자가 영화기자로 작업하기 시작한 50년대 중방 이후의 모든 중요한 영화인을 다 수록해보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편한 조건 때문에 여기에는 그 극소수밖엔 수록하지 못해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다른 기회에 기대해볼 수밖에 없겠다.
끝으로 이러한 좋은 기회를 필자에게 맡겨준 중앙일보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조스』에 쓰인 인조상어 앞에서 우리 영화의 앞날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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