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없는 「맹인마라톤」(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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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상계6동 한국맹인복지연합회 앞뜰에선 전국맹인학생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여든 30명의 맹인학생들이 출발점에서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소 건강하지 못해 마라톤구간을 완주해 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18세때 공장에서 화공약품이 눈에 들어가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는 이성환씨(28·서울맹학교 고등부3)는 이날 대회를 위해 20일동안 연습해왔다며 긴장된 표정이었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학생 18명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길안내를 받기 위해 이들과 손목에 하얀끈을 연결해 2인1조를 이룬채 힘차게 뛰쳐나갔고 약시인 12명은 혼자힘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힘내라,힘내.』
『결승점이 멀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힘을 내자구.』
끈으로 서로를 묶은 전맹학생과 안내원들은 더딘 걸음이었지만 한마음 한뜻이었다. 이들이 달려나가는 길가에는 여느 대회와는 달리 관중들이 없었고,단지 교통정리를 하던 모범운전자들만이 성원을 보내줄 뿐이었지만 이들은 왕복 8㎞ 구간을 한사람의 낙오자 없이 완주했다.
『사랑으로 하나됨을 위하여 힘차게 달려나가자』­.
행사장에 내걸린 현수막은 장애인과 일반인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행사가 끝날 때까지 선거철에는 약방의 감초격이던 지역기관장이나 유지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유광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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