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조롱으로 큰 상처 전형적인 캠퍼스 킬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영국의 BBC 방송은 범죄학자.정신분석가 등의 말을 인용해 조승희가 '사회적 거부' '죽음에 대한 집착' 등 캠퍼스 살인범들이 공통으로 지닌 다섯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AP통신은 "주변의 왕따와 조롱.학대가 조씨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BBC에 따르면 캠퍼스 살인범은 주류 사회로부터 진입이 거부되는 '사회적 거부(rejection)' 현상을 겪는다. 조승희의 동영상에는 "너희는 내 영혼을 파괴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의 정신분석가인 로빈 코월스키 교수는 이 대목이 조씨가 미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증좌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씨의 중.고교 동창생들에 따르면 그는 조롱과 왕따의 대상이었다. 그가 졸업한 웨스트필드 고교의 동기생인 크리스 데이비스는 AP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책을 큰 소리로 읽게 했다. 승희 차례가 되자 그는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읽지 않으면 F학점을 주겠다고 하자 그는 입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처럼 이상하고 낮은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 웃기 시작했고, 일부는 손가락질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라'라는 야유를 보냈다.

조승희는 또 살인범들의 공통점인 '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조씨가 만든 비디오에는 그가 사냥용 조끼를 입고 카메라에 권총을 겨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총기류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캠퍼스 살인범들은 또 공통으로 '죽음에 대한 집착'을 갖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미화하고 죽음을 연습한다. 조승희가 쓴 희곡 '리처드 맥비프'에는 "딕을 반드시 죽여야 해. 딕을 죽여. 딕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그의 머릿속에 항상 죽음이 맴돌았다는 얘기다.

살인범들은 대개 과대망상증.우울증.정신분열증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 조승희도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을 앓아왔다. 조씨와 같은 방 기숙사를 썼던 존과 앤디는 18일 CNN 방송에 출연해 "조승희는 여자에 대한 편집증 환자"라고 증언했다. 조씨는 또 다른 살인범처럼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다.

조승희가 NBC-TV에 보낸 비디오엔 "너희를 제거하는 인물이 불쌍하고 하찮은 소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라는 대목이 있다. 스스로 '하찮은 사람'이라고 여긴 조씨의 콤플렉스와 그를 그렇게 느끼게 했던 주변의 환경이 그를 결국 킬러로 키웠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