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팔고 보자'에 소값 급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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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가에선 2001년 쇠고기 수입자유화를 앞두고 나타났던 소값 폭락 재연을 우려하기도 한다. 당시 농가는 수입 쇠고기가 밀려들 것으로 걱정해 마구잡이로 암소를 도축했다. 이 때문에 한우 쇠고기값이 폭락하고 생산 기반도 위축됐다. 그러나 정작 2001년 수입이 자유화된 뒤에는 한우 공급이 달려 한우 쇠고기값은 되레 급등했다. 농림부 민연태 축산정책과장은 "1999년에도 소값 파동이 일어났지만 미리 겁먹고 소를 판 농민만 피해를 봤다"며 농가의 신중한 대처를 당부했다. 정부는 27일께 소값 안정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소값 파동 조짐=암송아지값은 지난달 20일 전국 평균 263만4000원에서 19일 225만6000원으로 14.3%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송아지와 600㎏짜리 암소값도 7% 이상 하락했다. 특히 경기지역의 가격 하락 폭이 크다. 농협 관계자는 "산지 우시장마다 소를 팔려는 농민은 많지만 사려는 쪽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어서 아예 거래가 뚝 끊겼다"고 말했다.

소값이 이처럼 급락하고 있는 것은 FTA를 우려한 농민 불안심리 탓이기도 하지만 소 사육두수가 워낙 많은 데도 원인이 있다. 2003년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자 2004년부터 소값이 올랐다. 그러자 농가가 앞다퉈 송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2003년 148만 마리였던 소는 지난해는 200만 마리가 넘었다. 정부는 지난해 가을부터 농가에 송아지 키우기를 자제하라고 홍보하고 나섰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23일께엔 육류수입업체 네르프가 미국산 쇠고기 10t을 다시 들여올 예정이다. 이번에는 뼛조각이 발견되더라도 해당 상자만 반송한다는 게 농림부 방침이다. 따라서 3년5개월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공산이 커 농가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 99년 전철 밟지 말아야=쇠고기 수입자유화가 거론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 암소 도축이 급증했다. 99년에는 한 살 이상의 암소 10마리 가운데 네 마리가 도축됐다. 95년 도축률 10%의 네 배였다. 95년 15만t 안팎에 머물던 한우 쇠고기 공급도 97년 이후 20만t이 훌쩍 넘어갔다. 덩달아 한우 쇠고기 소비자가격도 95년에 비해 98년엔 17% 가량 하락했다. 그러나 정작 수입이 시작된 2001년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암소를 마구잡이로 도축한 탓에 한우 쇠고기 공급이 달렸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가 밀려들긴 했지만 한우 쇠고기값은 2000~2003년 되레 47%가 올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서진교 무역투자정책실장은 "FTA가 발효돼도 수입 쇠고기 관세율은 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낮아진다"며 "99년의 경우 지레 겁먹고 소를 도축하거나 판 농가만 피해를 봤고 한우를 미리 확보한 유통업체의 배만 불렸다"고 지적했다.

정경민.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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