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상호사찰 이뤄져야 “실효”/북한 핵협정비준 이후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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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처리시설 신고할지 큰 관심/“얻을건 다 얻었다” 국제사찰은 시간표대로 받을듯
북한이 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안전협정 비준을 동의한 것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에 이르는 하나의 고비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협정에 대한 비준서를 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발효시킬 경우 IAEA의 핵비확산조약(NPT)에 의해 사찰에 이르는 시간표가 정해지게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완전히 풀기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만이 아니라 남북상호사찰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국제사찰을 위해 앞으로 남은 과정은 김일성 주석이 협정에 서명,비준하고 이를 IAEA사무국에 서면 통보하는 순간부터 발효된다. 발효후 90일 이내에 보조약정서를 발효시키도록 돼있고 보조약정서가 발효된뒤 30일 이내에 사찰관을 임명하고 북한이 이에 대해 30일 이내에 동의여부를 통보하게 돼있는등 IAEA의 시간표대로 움직이게 돼있다.
이 시간표를 계산해보면 북한이 바로 비준서를 기탁하고 사찰관 임명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90일(보조약정 체결)+30일(사찰관 동의)+7일(사찰 통고)등 앞으로 최대한 넉달은 합법적으로 북한이 시간을 끌수 있어 8월말이 된다.
다만 북한의 전인찬 대사와 오창림 대사 등이 지난 1월과 2월 기자회견을 통해 6월까지는 사찰을 받겠다고 밝혔었고,한시해 조평통 부위원장도 최근 동경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북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은 순탄한 길을 걷고 있다고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은 6월에서 8월사이가 될 것이지만 6월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
북한이 6년 이상이나 끌어온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는 것은 이미 국제적인 압력이 북한을 옥죄고 있고 핵사찰을 흥정거리로 삼아 미군핵무기의 철수,팀스피리트훈련의 중단,핵사찰이후 미국과 일본의 관계개선 약속등 기대이상의 선물도 받아 더 이상 버티기 곤란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캔터 미국무차관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와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으니 관계개선을 하자고 조르는 것도 이같은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제의무의 이행이 미국 및 일본 등과의 관계개선에 전제조건이 돼있어 이를 이행하지 않고는 파탄지경의 경제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IAEA에 의문의 「재처리시설」을 포함시켜 사찰대상으로 보고하느냐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IAEA사찰은 신고시설에 대해서만 실시할 수 있게 돼있다. 이제까지 재처리 시설이 없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갑자기 이것을 보라고 공개할 가능성이 희박하고,IAEA사찰에 대비해 숨겨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등 우방 들은 비핵화선언에 의한 남북 상호사찰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측은 남북상호사찰 규정마련에 갖가지 함정을 만들고,비핵지대화 문제도 계속 제기하는등 시간을 끌고 있다.
또 헌법에도 없는 최고인민회의의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해 시간을 늦추는등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이행에 이르는 단계마다 극적인 효과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것도 「국제의무」인 IAEA의 사찰만 수용하고,남북상호사찰은 회피하려는 복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측은 한미 양국 정상이 이미 미군핵무기의 철수사실을 확인해줘 더이상 상호사찰에 절실한 매력을 못느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앞으로의 핵문제는 북측이 남북 상호사찰제도 마련에 성의를 보여 비핵화공동선언을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김진국기자>
◎북한 핵개발 문제 일지
▲85년 12월=북한,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
▲89년 9월=프랑스 위성 「스팟」,영변 핵시설 촬영
▲90년 6월=한국 국방부,북한이 90년 중반에 핵무기제조 가능 하다고 발표
▲91년 7월15일=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 문안 합의
▲91년 7월30일=북한 외교부,한반도 비핵지대화 공동선언 제안
▲91년 9월12일=북한,IAEA이사회에서 주한미군 핵보유를 이 유로 핵안전협정 서명거부
▲91년 11월8일=노대통령 「비핵화선언」 발표
▲91년 12월18일=노대통령 「핵부재선언」
▲91년 12월31일=남북,「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합 의
▲92년 1월30일=북한,핵안전협정에 정식 서명
▲92년 2월19일=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공동 선언」 채택
▲92년 4월9일-북한 최고인민회의,핵안전협정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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