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창건(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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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유당 말기에는 대통령의 해외나들이 때마다 장안의 학생들을 동원해 비행장가는 길가에 몇시간이고 세워놓았다가 어르신네가 지나가면 태극기를 흔들게 했다. 또 경무대쪽으로 가는 길에서는 대통령이 행차할 때마다 점퍼차림의 사나이들이 나타나 행인들에게 박수를 치도록 유도했다.
어떤 사람이 그 짓이 싫어 『박수,박수』소리가 들려오면 곧장 한손에는 책,다른 손에는 또다른 책과 신문을 들고 서서 손이 모자라 박수치지 못하는 척 했다. 그러나 그는 수상하니 조사할게 있다,도로교통법을 위반했으니 가자고 해서 끌려갔다.
○“수염기르면 스탈린”
누구보다 신원이 확실하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도 별수 없었다. 소지품을 조사받고 책내용을 꼬치꼬치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어이없는 일이라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았다. 그러자 취조관들이 따귀를 때리고 발길로 차며 빨갱이라고 했다.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박애주의사항에 물든 그는 평소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존경했다. 교수신분으로 의학공부를 다시해 아프리카에 가서 사랑과 의술을 편 슈바이처 박사를 흠모한 그는 책갈피에 그의 사진을 끼워두고 있었는데 그것이 스탈린이라며 죽도록 때리는 것이었다. 변명은 더 큰 주먹을 부를 뿐이었다. 수염만 기르면 모두 스탈린이란 말인가.
그 무렵 「한국깡패론」이라는 황교수의 글이 있었다. 술집·상가·암흑가의 깡패두목은 권력의 비호를 받아야 하고,또 권력 추종자들은 집권층에 맹종해야 하니 결국 한국의 깡패두목은 경무대에 있다는 줄거리였다.
그때 이 박애주의자는 바로 그 「한국깡패들」에게 실신할 만큼 두둘겨 맞았다. 내가 음악회에서 아무리 감격스러운 연주를 듣고도 박수를 치지 않게 된 것은 바로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다.
3공화국 때에는 예금이자보다 적은 적금이자와 박영복이 횡령한 74억원이란 액수의 크기를 계산한 신문기고가 문제되어 나는 여러차례 경고를 받았다. 심지어는 귀신도 모르게 잡아다가 죽도록 때린후 자루에 넣어 한강에 쳐 넣을지도 모른다는 협박도 들었다.
○서슬퍼랬던 유신시절
여러 경로를 통한 몇번의 주의가 있었지만 나는 전혀 악의없이 쓴 글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서슬이 퍼런 유신시절 「신체와 직업」이라는 글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는 눈·귀·코·감각으로 외부의 정보를 수집한 다음,머리에 저장해둔다. 그런데 신체의 어느 부위를 써서 일하느냐에 따라 직업의 귀천이 결정되는데 정보수집기관과 일하는 부위의 거리가 짧을수록 고급직업이다. 왜냐하면 전기저항과 마찬가지로 입수된 정보가 몸안에서 긴 거리를 통과하면 손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직업은 눈과 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입을 쓰는 직종,즉 교수·변호사·성직자 같은 직종이다. 그래서 중세기의 대학에서는 주로 이런 직종을 교육시켰다.
다음으로는 손을 움직이는 직업인 설계사·의사·기악가·수공업자들이다.
셋째는 발을 쓰는 운동선수다. 이보다 나쁜 직업은 엉덩이를 흔들어 먹고 사는 기생인데 이 경우 정보경로가 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뒤돌아 엉덩이까지 올라와야 하므로 저항이 커 손실이 많다.
가장 나쁜 것은 자전거타는 직종이다. 자전거타는 사람이 언덕을 쉽게 오르려면 머리를 앞으로 굽실거리고 발로 페달을 힘있게 밟아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높은 분에게는 항상 머리를 굽실거리고 아랫사람은 억센 발로 무자비하게 짓누르는 자를 독일에서는 자전거타는 사람(Radfahrer)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런 부류의 아첨배겸 폭군이 많아 살기가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집에 와 생각하니 그간 여러차례의 경고가 떠올라 신문사에 가서 자전거타는 사람을 삭제하고 대신 기생부분을 부각시켰다. 그런데도 다음날 불벼락이 떨어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를 엉덩이 흔드는 기생으로 비유했으니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른다는 것이다. 저녁에 모 기관원이 찾아왔다. 만일 내가 서울에서 교육받지 않았더라면,또 선배들이 감싸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때 나는 어딘가에 끌려가 추락사라는 이름으로 처리되었을지도 모른다. 살기가 힘들어 이만가려 해도 길이 막혀 있었다.
○사라져야 할 구악들
이제와서 그 얘기를 하는 것은 그때 나를 짓밟던 자전거 선수들을 고발하거나 나무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자전거 부대가 이 나라의 주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이고,또 웃분들은 자전거 잘타는 사람을 중용하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다.
권력에 보다는 정의로움에 머리를 흔들고,밑에 깔린 민초들을 짓밟지 말고 그들을 북돋워주며 일으켜 세워 다같이 의로운 사회를 지향하자는 소망으로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본다.<원자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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