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심의 규정|사생활·어린이 보호 역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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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밤늦은 시간 TV를 끝까지 보는 사람은 화면에서 이런 자막을 보게된다.
「본 방송은 방송 위원회의 심의 규정을 준수합니다」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이 자막이 나간 직후 그 날 방송은 막을 내린다.
이 문구의 숨은 뜻은 각 방송국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방송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런데 방송국들은 그동안 그렇질 못했다.
부당한 심의 여부로 가끔 논란을 빚는 방송위의 위상은 둘째로 치고 각 방송사는 심의 결과가 나왔다하면 방송위와 늘 티격태격해 왔다. 방송사들의 얘기로는 심의규정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토록 돼 있다는 것이다.
방송계 안팎에서 거론돼 온 이 같은 지적의 타당성을 인정한 방송위는 심의 규정 개정에 착수했고 9개월간의 작업 끝에 1일 개정안을 확정했다.
7월1일부터 시행될 이번 개정안의 특징은 ▲보도 방송의 공정성·정확성 제고 ▲인권·인격의 보호▲어린이·청소년의 보호▲방송 언어의 순화 등에 초점을 맞춘데 있다.
이 개정안은 심의범위·심의 절차는 물론 심의 규정을 어겼을 때의 제재 조치 등을 망라해 규정해 놓은 점이 눈길을 끈다. 개정안은 모두 6장 130조 부칙으로 돼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헌법상 정치인과 정당 간부는 보도나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출연할 수 없도록 한 대목이다 다시 말해 시사성을 띤 프로그램에는 정치인이 진행을 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논란을 빚고있는 정치 연예인의 방송 활동과 관련, 연예인 출신 국회 의원의 경우 드라마 출연은 괜찮지만 TV·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은 안된다는게 방송위의 입장이다.
때문에 MBC-TV드라마『사랑이 뭐길래』에 출연중인 이순재씨와 같은 방송의『전원일기』에 나오는 최불암씨는 계속 TV에 얼굴을 내밀 수 있으나 SBS-TV『현장쇼 주부 만세』의 진행을 맡았던 이주일씨는 방송위의 유권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이씨는 다시 진행자로 나서고싶어 하지만 프로그램의 진행자라는 점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씨는 이 부분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시사물이 아닌 오락 프로이므로 출연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사생활과 인권 보호 조항을 크게 강화했다.
예컨대 보도 부문에서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표현을 피하는 한편 수갑을 차거나 수의를 입은 상태를 정면에서 근접 촬영한 장면을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이 개정안은 명시했다.
방송 언어의 순화에도 역점이 두어졌다. 프로그램 고정 진행자는 반드시 표준어를 쓰도록 했다. 방송 광고의 기준이 강화된 것 역시 관심을 모은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비닐·수은 전지 등의 화학물질 광고는 사용상의 주의 사항과 폐기 방법을 밝히도록 했다.
광고방송 중 어린이 보호를 위한 항목이 특히 보완됐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인물 주인공, 만화 주인공을 이용한 광고를 해당 프로그램의. 앞뒤에 방송할 수 없도록 했다. 이번 새 방송 심의 규정으로 각 방송사에는 진행자 교체 등을 놓고 한바탕 큰 소란이 일것으로 보인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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