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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각축장 된 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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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으로 지난 4년 동안 민간인 학살, 부녀자 성폭행, 방화, 약탈 등 온갖 반인륜범죄가 자행된 다르푸르 지역에 안정이 찾아올 분위기다. 3000명 규모의 유엔 병력이, 현재 주둔 중인 7000여 명의 아프리카 연합(AU)군과 협력해 치안 회복에 나선다. 전투 능력도 크게 개선된다. 공격용 헬기를 배치해 게릴라 조직의 거점에 대한 공격이 쉬워진다. 2004년부터 배치된 AU군은 열악한 장비와 작전수행 능력 결여로 제대로 된 평화 유지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앞으로 사태의 완전 해결을 위해 마지막 단계 중재안을 관철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3단계 중재안을 제시했다. 유엔 경찰 자문관과 민간 지원 인력을 파견해 AU군을 돕는 1단계안은 이미 실행 중이다. 이번에 수단이 받아들인 유엔군 파견은 2단계 조치다. 마지막 단계는 UN-AU 혼성군을 2만 명 규모로 늘리는 것이다.

이번 중재안 관철에는 일단 미국의 공이 크다. 수단 정부는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 앞에서 2단계 중재안 수용을 발표했다. 12일 수단에 도착한 네그로폰테는 5일간이나 머물며 수단 정부를 압박했다. "유엔이 제시한 혼성군 구성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더욱 강도 높은 고립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협력 시 국제사회 복귀를 돕겠다"고 달래기도 했다. 수단은 더 이상 유엔의 압력도 피하기 어려웠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다르푸르 사태의 해결사'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수단을 정해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을 설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리비아 등 아랍권의 회유도 있었다. 리비아는 수단 사태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한다고 14일 발표했다. '돈줄'인 사우디의 눈치도 봐야 했다. 고유가로 인해 활기를 띤 수단의 최근 경제 붐도 협력 결정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17일 "유전 개발 및 산유량 급증으로 급속한 경제 회복 단계에 들어간 수단이 국제사회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 부장관이 전격적으로 나서 수단 정부와 담판을 지은 데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수단 경제를 장악하다시피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다. 중국은 이미 수단 내 대부분의 유전 개발권을 차지했다. 이집트가 그토록 반대해 왔던 나일강 상류 발전 및 담수용 댐도 몇 개월 뒤 중국 업체에 의해 완공될 전망이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비협조로 그동안 다르푸르 사태 해결이 어려웠다고 비난한 바 있다.

2003년 시작된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내전과 이로 인한 인도적 재앙으로 이미 20여만 명이 사망하고 최소 20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유엔과 유럽이 사태 해결에 적극적이었지만 미국은 '대테러 전쟁'이라는 차원에서 수단 정부 옥죄기에만 나섰다. 그러나 요즘 알자지라 방송은 "미국이 제대로 나서니 물꼬가 트인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실어 미국의 노력을 평가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사태, 이란 핵 위기 등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미 행정부가 또 다른 중동의 위기인 수단과 소말리아 사태에서는 성공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대선을 앞둔 공화당의 정치적 행보이건, 중국을 견제하는 경제적 이유이건 간에, 중동 지역 평화에 기여하는 일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