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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도 안 배운 학생을 이공계에 입학시켜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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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에서 올해 초 2007학년도 이공계 신입생 976명을 대상으로 수학 기초실력을 평가했다. 중.고 수학교과서의 예제 수준 문제를 약간 변형해 출제했는데 전체 평균은 48.8점이었다. 고교 2~3학년 수준 문제의 평균은 34.2점에 불과했다. 협의회는 예상 외로 낮은 점수가 나온 주요 원인으로 고교 과정에서의 수학과목 선택제도, 객관식 선다형 위주 평가를 제시하고 대안으로 중등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고교 교육 과정과 대입 제도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현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선택교육과정인 제7차 교육과정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이다. 국가가 10학년(고등학교 1학년)까지를 필수로 지정하고 나머지는 심화 선택과정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고교 학생들은 미적분 수강을 선택할 수 있다. 수능과 연결해 보면 이공계로 진학하더라도 수리 가형(수학 II와 미.적분)과 나형 중 어느 것으로 응시할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리 가형은 나형에 비해 양과 질 면에서 3~4배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수리 가형에서 4~5등급을 받는 수험생이 나형으로 전환하면 2~3등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2007학년도 수능시험에서 수리 가형 응시생은 전체의 21%(12만3000명)로 전년보다 1만5000여 명 감소했다. 올해 수능에서도 가형 응시자는 20%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교 2~3학년 수준 문제의 평균 점수가 매우 낮은 것은 수리 가형을 선택하는 학생이 적다는 것과 관계가 매우 깊다. 그러면 수리 가형을 배우지 않고 이공계에 입학하는 것이 전적으로 고교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인가. 문제의 본질은 국가 교육제도와 고교 평가제도에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오늘도 고교 자연계열 교실에선 수학 II, 미적분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선택교육 과정이지만 전국 모든 학교에선 자연계열 학생이라면 이들 과목을 이수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자연계열 학생이 수리 가형을 포기하고 수리 나형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대학이 낮은 경쟁률이나 미달사태를 의식해 이공계에 대해서도 수리 나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계열.사범대 등 인기학과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이공계에서 수리 가형을 요구하는 대학은 30여 개뿐이다. 대부분 대학은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미적분을 공부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많은 학생이 수리 가형 수업 시간에 귀를 닫고 수리 나형 공부를 하고 있는 현실은 대학에서 수리 가형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은 신입생의 기초학력 저하 원인을 국가 교육제도나 고교 평가 형태에서 찾기 전에 대학의 이공계 신입생 전형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자신이 속한 대학에선 신입생들에게 수리 가형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되돌아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