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씨름 힘·몸무게 만으론 안 된다|이젠 기술승부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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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민속씨름이 힘의 씨름에서 기술씨름으로 다시 바뀌고 있다.
만기를 구사하던 이만기가「모래판의 악동」강호동의 엄청난 힘에 눌려 사라지면서 이제까지 힘의 씨름이 모래판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올 들어 서서히 기술씨름이 다시 고개를 드는 등 모래판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힘 씨름의 원조인 강호동보다 무거운 체중을 가진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부터 강호동 자신을 비롯, 초대형 선수들이 시간 끌기 작전에 말려들고 있다는 점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현역 민속씨름선수 중 최대중량을 가진 선수는「람바다」박광덕(럭키증권)으로 1m83cm의 키에 무려 1백54kg.
박의 뒤를 이어 올해 대구영신고를 졸업, 조흥금고에 입단한 김정필이 1백45kg으로 2위. 이어 역도선수출신인 이민우(삼익가구) 가 1m91cm·1백44kg.
이들 3명 외에도 올해 모래판에 등장하는 민속씨름선수들 중 1백40kg이 넘는 선수는 삼익가구의 성동춘(1백43kg), 신입생 김태우(1백42kg) 등 모두 5명.
이처럼 선수들이 초 대형화할수록 씨름판은 재미가 덜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져 왔다.
선수들이 대형화될수록 사용되는 기술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큰 선수일수록 힘을 앞세운 씨름을 하게되고 이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보다 체중 늘리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씨름 팬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큰 기술 승부는 그만큼 보기 힘들게 된다는 논리에서다.
이 같은 걱정을 말끔히 씻는 기술씨름으로의 회귀현상은 올 시즌을 여는 제62회 천하장사 겸 제62회 체급별대회(20∼23일·장충체)에서 씨름계의 주역 강호동(1백34kg·일양약품) 황대웅(1백30kg·삼익가구) 그리고 김정필의 경기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승률랭킹 1위인 강호동(41승7패, 85·4%)·상금랭킹 1위인 황대웅(4천4백10만원· 승률3위)은 한결같이 이같이 설명한다.
『선수 개개인에게는 체중에 따라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의 한계가 있다. 우리도 체중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늘릴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씨름기술들이 많아진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들을 상대하는 기술은 간단하다. 수비에 치중, 시간 끌기로 맞서면 체중이 가벼운 선수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필은 『상대가 시간 끌기로 나올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지난 겨울동안 선제공격기술습득에 주력했단 면서 이번 대회 첫날 단체전에서 임종구(럭키금성) 남동하(현대) 등 선배강호들을 제압, 기염을 토했다.
결국 일본의 스모 선수들처럼 체중 늘리기가 절대 유리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우리 씨름은 기술개발이 병행되고 있고 신기술의 개발·습득을 위해서는 적정수준이상의 대형화는 어렵다는 결론인 것이다. <김인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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