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탑」 무너지는 소리/신성식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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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아직 이른 때이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몇몇 긍정적 현상들은 우리 정치수준 향상을 위한 청신호로 받아들여져 왔다.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금품살포행위의 감소,유세장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준 높은 질서의식등….
그러나 19일 오전 서울 신월2동 복개천에서 열린 민자당 양천을 지구당(위원장 최후집) 정당연설회는 정강정책소개 대신 민주당 후보 비난으로 일관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민주당 김영배씨는 가톨릭신자임에도 불구,점괘에 따라 우리 아파트 아래층으로 이사한 「선거철새」예요. 매일 집들이를 하며 밀실매표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의원이 되려고 하니….』
인사말에 나선 최후보는 등단하자마자 이 지역구 근처에 살다 최근 이사한 김후보의 종교를 들먹이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김후보를 「매표꾼」이라고 비난했다.
최후보는 이어 『어젯밤 오토바이를 탄 민주당원 5명이 삐라를 뿌리는 것을 목격했다』며 김후보를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흐르지 않는 「썩은 물」로 몰아붙였다.
『현 야당의원들은 최후보와 달리 지식도 지성도 갖추지 못한,국회의장을 폭행하는 싸움꾼이에요. 이 지역구에도 한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은 몰아내야 합니다.』
이어 이날 대회의 지원연사 김종필 최고위원이 최후보의 입장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자 대회장 분위기는 절정에 달하는듯 했다.
대회는 2시간30분동안 한 목소리를 내며 끝났다.
물론 최후보가 지적한 불법사례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 후보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을 근거제시없이 공식 석상에서 거론하는 것은 책임있는 여당의 후보가 갖추어야할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었다.
정당연설회는 시간적 제약이 따르는 합동유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시간여유를 갖고 후보 자신과 공약,소속정당의 정강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회는 정당연설회가 갖는 취지와 달리 상대후보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일관해 20년만에 부활된 정당연설회의 의미를 퇴색케하고 모처럼 싹트고 있는 공명선거 분위기를 흐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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