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나더러 ‘저 빨갱이’라 하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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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13일 0시쯤 경북 문경의 문경새재. SBS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장에 손학규(사진) 전 경기지사가 찾아와 인사를 했다. 12일로 지방 순회 활동을 재개한 그는 인근 식당으로 옮겨 지역 인사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오전 3시까지 이어진 강행군 틈틈이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의 얼굴은 탈당 직전보다 한결 밝았다.

-대선 경선에 승산이 없어 한나라당을 나온 것 아닌가.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이명박 전 시장이 곧 무너질 텐데, 박근혜 전 대표는 안될 텐데 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니 캐스팅 보트를 쥐면 차기 총리나 당 대표는 그냥 된다고 했다. 지분을 챙기고 주변 사람 챙겨주고 ‘차차기’도 바라보고, 꽃놀이패라는 거였다. 그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선택이 아닌가. 내가 그걸 위해 정치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배신·변절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탈당을 앞두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민들에게 ‘정치는 다 저런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실망을 줄 것 같은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미지를 지키겠다고 유약한 길을 택하는 것은 또 다른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탈당 후 며칠간 손 전 지사 캠프에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을 구태라고 했는데.

“국민연금법 부결 사태를 보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획일적 투표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면 대선을 앞두고 당리당략에 의한 구태정치, 거수기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도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유사한 법과 정책의 채택과정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북핵 해결을 위해선 남북 정상회담이라도 하자고 했더니 당에선 ‘저 빨갱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탈당 후 ‘선진평화연대’라는 제3세력을 추진하며 범여권과 거리를 두는데.
“여권의 실패는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실정도 있지만 21세기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진보ㆍ좌파라는 세력들이 과거지향적이었다. 종속이론적 세계관으로 미국에 대해 자주노선을 내세우며 국제 협력의 시대 정신을 못 읽었다. 1980년대식 사고방식에 고착돼 그저 과거사만 캐는 게 개혁인 양 했다. 386이 정권 핵심을 장악하며 인사의 실패가 왔다. 이런 낡은 진보와는 길을 달리하는 제3의 정치 노선이 필요하다.”

-제3 세력을 규합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미래지향적인 진보와 합리ㆍ실용적 개혁을 추구하는 게 제3의 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베이스다. 40대 전후 지식인이 주축이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면서도 과거 민주화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다. 과거 대선에선 단순히 지지자에 머물렀지만 이젠 그들이 주체로 나설 여건이 조성됐다. 새 세력이 환경과 모태를 만들고 핵심 코어를 형성한 뒤 기성정치권의 합류가 시작될 거다. 6월 정도면 윤곽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세력을 형성할 공간이 있을까.

“결국 제3의 세력이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주류로서 자리잡게 될 거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는 굳건할 것이다. 여기에 맞설 세력은 과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실용적 진보가 돼야 한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제3 지대를 통해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많다. 그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다.”
-‘대선주자 연석회의’를 비롯한 범여권 통합 움직임에 참여할 의향이 있나.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자리를 만드는지 봐야 한다. 새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또 다른 갈등의 요소를 만드는 것이라면 안 된다.”

-탈당 후 첫 방문 지역을 한나라당 텃밭인 TK(대구ㆍ경북)로 택한 이유는.

“호남을 갔다면 호남에서 당장은 좋아할 거다. 그건 또 하나의 지역주의다. ‘경상도당’에 있다가 버림받고 나니 전라도로 간다? 힘든 길 들어섰으니 한나라당 본거지부터 와서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떠나니 이미 얘기가 됐던 대학 강연이 취소되는 일까지 생긴다.”
-이 전 시장의 ‘시베리아’ 발언에 화를 냈었는데.
“진중치 못한 발언이었다. 국민은 진실한 사람을 원한다.” 

문경=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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