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길(소설가)|점심시간에 「쌈지독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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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직장인들에게 있어 생활의 잔재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점심시간이다.
때로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경우도 많지만 점심시간이란 요컨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유일하게 공식화된 혼자만의 자유시간인 셈이다.
톱니바퀴처럼 곽 짜인 채 돌아가는 조직생활 속에서 일제히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동일하게 부여되는 이 짤막한 자유는 따라서 직장인 각자가 어떻게 활용하든간에 결코 간섭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이 글자 그대로 알토란같이 돈으로 환가되는 현대생활에 있어1시간 가량의 이 자유는 대단히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할 때 이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매우 경제적으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이른바 생활 속의 격조 높은 문화를 향유하는 색다른 아이디어가 있다.
우선 30분 이내에 점심을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을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서점으로 곧장 발길을 옮겨 보는 것이다. 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좀 큰 서점들은 요즘 마치 「거리의 도서관」같은 구실을 한다. 독자들이 마음놓고 책을 붙들고 있어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다.
따라서 느긋한 마음으로 책방에 발을 들여놓은 다음 뭐 읽을만한게 없는가 이것저것 살핀다. 문득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그 자리에 선 채 읽어 나간다. 대부분의 서점들이 독자들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고 있으므로 자세히 귀 기울이면 클래식 음악감상까지 겸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마음에 드는 책을 적당한 시간만큼 읽어나가다가 중단하는 부분의 목수 끄트머리를 가능한 한 쪼끔 접어 살짝 표시해둔다. 그랬다가 그 다음날 다시 와서 또 조금 읽는다. 이런 식으로 읽기를 계속해 나가는데, 이건 말하자면 점심시간의 자투리를 할애하는 「쌈지독서」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보통 1분에 6백40자 정도를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 10분이면 6천4백자, 즉 일반책자 6쪽 분량을 읽는 셈이다. 하루 30분이면 18쪽을 읽게 되니까 20일을 꼬박 달려들면 3백60쪽 분량의 책 한 권은 거뜬히 읽어낼 수가 있다는 계산이 된다.
기묘한 것은 이런 식의 책읽기를 즐겨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재미가 붙게 되고, 재미가 붙으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게되어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한번 발을 담그기가 어렵지 시작했다 하면 스스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 또한 책읽기인 것이다.
『생활 속에 문화를…』이란 제목의 글을 문화면에 싣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특별히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향수할 수 있음을 짧은 글 속에 전하려 합니다. 문화·예술인과 관심 있는 사람들의 경험·지혜가 담긴 글들을 통해 생활의 윤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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