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못하는 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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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문>28개월 된 아들이『엄마』 『아빠』외엔 말을 못합니다. 심부름을 시키면 다 알아서 하는데 말을 시키면 전혀 따라 하지 않습니다. 지능이 낮거나 신체 일부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지요. <홍은희·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답>보통의 한국 엄마들은 『엄마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말도 시켜야 하고, 수도 가르쳐야 하고, 영재교육도 시켜야 하는 등입니다. 더구나 이런 것을 가르치는 자세를 보면 교과서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합니다.
책을 보지 않으려는 애를 데려다놓고 『여기 토끼가 있네. 토끼, 따라 해봐. 토끼, 토끼』아이가 하지 않으면 곧장 이렇게 말하지요. 『아유 답답해, 이 바보야 좀 따라 해봐』또는『글쎄 얘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센 줄 모르겠어』.
그러나 이 같은 강요, 아이 마음에 수치심을 심어주는 일은 금물입니다. 말이란 아이 스스로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 날 때하는 법입니다. 속상함·기쁨·분노·배고픔 등과 같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찰 때 나오게 되는 법입니다.
일반적으로 만 두돌 박이는 두 마디 문장을, 세 살 박이는 세 마디 정도의 문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발달처럼 개인차가 큰 것도 드뭅니다. 실제로 현재 저명한 유아교육 교수중엔 만 세 살이 되도록 말 한마디 못했던 분도 있습니다. 만 세살 정도까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대하세요. 하나를 가르치고 곧장 결과를 보려하는 것은 성급한 부모의 마음일 뿐이지요. 「최선을 다하되, 거두는 것은 아이 자신」아닐까요.
아이에게 좋은 언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야기를 해주거나 엄마 아빠 출근길에 인사하기 등은 자연스런 교육이지요. 물먹을 때 『자, 물 한 컵 있네』, 계단을 오르며 『하나 둘 셋』등이지요. 굳이 따라하라고 강요하지 맙시다.
보통 말이 느려 뇌의 이상이나 저능아는 아닌가를 걱정하는 경우의 90%이상은 정상입니다. 다른 발달도 느리고 눈빛이 풀어져 있을 때는 소아정신과나 대학부설 언어 청각 임상센터 등을 찾아 먼저 진단을 받아보세요. 이럴 때도 아이를 옆에 두고 『얘 혹시 이상한 것 아니에요』식의 얘기는 삼가야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동 그 자체를 인정해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어 표현발달이 느린 애는 사고력이 더욱 발달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까요. <도움말=현은자(성균관대 유아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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