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대표 "李 전총재 늘 失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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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와 최병렬 대표 간에 심각한 갈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대선 비자금 사건 대응 방식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崔대표 측은 李전총재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반면 李전총재 측은 당 수뇌부가 잘못 대응해 자신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고 섭섭해 한다. 상호 불신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는 형국이다.

崔대표는 10일 양산에서 李전총재의 고해성사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대선자금 전모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적극적으로 대선자금 전모를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자금을 밝힐 의향도, 능력도 없다던 종전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李전총재 측이 대선 자금을 공개하지 않으면 당이 먼저 공개할 수도 있다는 압박성 발언으로 해석됐다. 아닌 게 아니라 김영일 전 사무총장이 폐기했다던 대선자금 관련 자료를 재정 관계 실무자들이 분산,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崔대표가 결심하면 대선자금의 전체 규모와 수입.지출 명세가 상당 수준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崔대표는 다른 자리에선 "李전총재가 늘 실기(失機)해 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李전총재가 당을 장악했을 때 벌어졌던 '박근혜 의원 탈당 사태''집단 지도체제 전환 문제'에서 그런 점이 나타났다는 게 崔대표의 생각이다.

李전총재 측도 화가 많이 났다. 崔대표가 방어벽 노릇을 제대로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대선 비자금 수사가 한나라당을 타깃으로 한 편파수사임에도 불구하고 형평성 문제를 부각하지 못함으로써 李전총재와 그 주변만 일방적으로 피를 흘려왔다는 게 李전총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李전총재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당 수뇌부를 겨냥, "대선자금 대(對) 대선자금의 문제를 대선자금 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로 몰고 가는 등 본질에서 벗어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수차례 자기 입으로 부정한 돈을 썼다고 했는데도 그걸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있다"며 "일만 터지면 자기들부터 살 구멍을 찾는 게 한나라당의 현실"이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심지어 일부 측근들은 崔대표가 검찰의 대선 비자금 수사를 수수방관함으로써 당내 李전총재 세력을 약화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형편이다. 서청원 전 대표도 그 같은 주장을 거들고 있다.

결국 외부에서 터진 '수사 폭탄'이 운명 공동체를 다짐하던 한나라당의 전.현직 지도부를 갈라 놨고, 이는 제2, 제3의 연쇄 폭발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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