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보­혁 균형 깨진다/등소평등 개혁강조 발언 배경(포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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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등 친위세력 강화에 초점/전인대·당대회서 개혁파 득세 전망
중국의 최대명절 춘절(설날)을 맞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87)은 심천·주해·상해 등지를 순회하면서 경제건설 가속화를 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 보수색조를 띠어온 당기관지 인민일보는 매일 개혁·개방노선을 고무하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이와 함께 장쩌민(강택민) 양상쿤(양상곤) 차오스(교석) 완리(만리) 톈지윈(전기운) 주룽지(주용기)등 고위급 인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이곳저곳에서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 다음달 20일 제7회 제5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을의 중공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라는 중요정치일정을 앞두고 이같은 켐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천안문사태이후 보수·개혁파간의 균형을 유지해온 중국의 정치판도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등소평이 추구하는 당정책은 일단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당의 기본노선 및 공작(사업수행)중심을 경제발전에 두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나갈 개혁파위주의 인사진용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천안문사태이후 개혁파의 선두주자 자오쯔양(조자양)이 실각하면서 중국최고지도부내에는 등소평에 대한 견제세력인 보수파가 형성됐다.
등은 사실 중앙에서의 친위세력기반이 부족한 실정이다. 당무에는 쑹핑(송평),정무에는 리펑(이붕)·야오이린(요의림)·쩌우자화(추가화),선전에는 덩리췬(등역군)과 리루이환(이서환)·딩관건(정관근)·주용기 등이 포진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권력의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핵심권력기반은 군과 지방지도층. 군사위 주석진을 강택민에게 양도했지만 양상곤·양바이빙(양백빙) 류화칭(유화청)을 통해 전군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이 개혁·개방의 수혜자들인 지방지도층의 등에 대한 지지는 공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올가을 14당대회에서 등소평이 권력의 핵심기구인 정치국에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경우 군 및 지방세력의 강화,그리고 당정부문의 친위세력 강화에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14당대회를 앞두고 보혁간 「권력투쟁」의 핵심쟁점은 ▲정치국 상무위의 재편문제 ▲은퇴가능성이 있는 요의림과 송평의 후임 인사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보혁대결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서구적인 정치적 이념에 근거한 보수·개혁파의 양분은 중국의 정치풍토에 적합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보수파의 최고거두로 불리는 천윈(진운)은 6·4천안문사태당시 과격한 진압방식을 반대했다.
이에 반해 개혁·개방정책의 총설계사며 추진체인 등소평은 천안문사태당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판도는 보수·개혁의 양분론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례로서 중국 특유의 정치현상인 당파를 들 수 있다. 고마오쩌둥(모택동) 주석이 『당안에 또 당이 있고 당밖에 또 파벌이 있다(당내유당 당외유파)』고 개탄했던 현실은 지금도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파벌에는 보스(산두)가 있고 지연·혈연 등이 복잡하게 얽혀 거대한 정치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관련에서 볼때 13당대회이후 국내적으로는 천안문사태,국외적으로는 소련 및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 해체라는 격변을 치른뒤 5년만에 열리는 이번 14당대회에서 인사에 주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관영 인민일보는 최근들어 3년간에 걸쳐 실시된 ▲경제구조 간소화 ▲산업내실기반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한 치리·정돈의 성공적 수행으로 안정기조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곧 89년 천안문사태이후 3년간 개혁·개방을 정지상태에 놓이게 했던 장애요인이 없어졌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보수세력의 정치적 이용가치가 그만큼 퇴색됐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중국은 13당대회를 전후해 중앙과 지방 당정기관의 간부에 대한 전문화와 연경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14당대회는 따라서 국내외의 위기적인 정세속에서 정체됐던 인사가 다시 본궤도에 진입,최대의 정치쟁점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인사가 「고무 도장」으로 희화되는 전인대에서나 당의 단합을 과시하는 통과의례인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추진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주요대회에 앞서 내부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정책결정 과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 여름 개최될 비공식 고위 당간부회의 북대하회의는 중국의 20세기 마지막 10년을 이끌어갈 정치판도를 엮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북대하 회의는 표면적으로 이미 중국의 대세로 되어 있는 개혁·개방의 강화를 재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번회의가 당내원로들의 혈육들인 「태자당」을 중심으로 한 권력독점상황을 재정비하는 모임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홍콩=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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