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 스타 재테크, '양극화의 사생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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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현대인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TV를 켠다. 이들은 그날 하루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지쳐있다. 속된 말로, 먹고살려니 힘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돈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십억원을 번 연예인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렇게 재테크를 하고, 저렇게 절약하라고 충고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10억을 모을까'라는 내용이 전파를 타고 방송된다.

자신만의 재테크 노하우로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연예인의 사연. 이 이야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 남편은 기가 죽을 수밖에.

돈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흥미 있는 소재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있지만, 부동산 광풍으로 인해 돈을 번 '졸부'들도 많은게 현실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소시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 시청자는 "70년대, 지금보다 경제 사정이 훨씬 좋지 않았던 시절에도 연예인들이 TV에 나와 돈벌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진 않았다"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30년 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웬만한 가정에는 TV와 컴퓨터가 있고, 자가용을 보유한 가구도 급증했다. 그런데 더 살기 좋아졌음에도 불구, 예전보다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세상이 그만큼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각 방송사마다 재테크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편성, 방영하고 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경제야 놀자', SBS '잘살아보세', KBS '경제 비타민' 등이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껏 알지 못하던 경제 지식을 알게 되고,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도 동시에 일고 있다.

'경제야 놀자'에서는 연예인이 소장한 수 백 만원짜리 의류를 소개하는가 하면, '경제 비타민'에서는 수십억원을 번 연예인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그리고 출연한 연예인들은 돈과 관련된 재미있는 '수다'도 이어진다.

한 시청자는 "더 이상 연예인이 TV에 나와서 시청자 바보로 만드는 쇼는 그만 보길 바란다"며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연예인 수십억원 모은 것이 절약을 통해서라면, 수십 억을 못 모은 서민들은 절약을 안해서 못 모았단 말인가"며 "서민들이 아무리 절약해도 수십억원은 절대 모을 수 없는 돈"이라고 전했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아껴서 30억원을 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답은 로또와 부동산뿐이다"라는 반응을 보인 시청자도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일반 서민들이 처한 상황은 분명 다르다. 서민들이 연예인의 상황을 참고해서 재테크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또 실제 제대로 된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서민들의 수도 많지는 않다. 이 때문에 "적은 액수라도 일상 생활에서 조금씩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또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에게 물질만능주의를 주입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일고 있는 상황. "차라리 수십억원을 번 연예인이 아니라, 수 백만원이라도 사회에 기부를 한 연예인을 소개하라"라는 시청자도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도대체 기획 의도가 뭐냐", "돈 많은 연예인 소개 프로그램일 뿐", "세상에는 돈 보다 귀한 것들이 많다"이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사진=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경제야 놀자'(위)와 KBS '경제 비타민']

[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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