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이산가족 상봉부터”정총리/평양총리회담 이틀째 회의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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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핵」실무접촉 자정넘도록 진통/연총리,정신대 배상문제에 공동대처 제의/북언론 “합의서발효”대대적 보도… 변화 조짐
▷2차회의◁
20일 2차회의에서 먼저 기조발언에 나선 정총리는 19일 저녁 북측최고책임자의 실천약속공표를 촉구한 노태우 대통령 특별담화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북측에 이산가족교류·핵사찰수락 등을 거듭 요구.
정총리는 『지금은 말을 앞세울 때가 아니라 실천할 때』라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제시.
정총리는 『이 문제가 이처럼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머물고있어 우리 남녘의 많은 사람들은 남북간의 다른 합의사항도 행여나 이처럼 되지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표명.
정총리는 이어 『또하나의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핵전쟁위험을 제거하는 일』이라며 『핵전쟁의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화해와 평화,교류·협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북측의 결단을 촉구.
정총리는 『우리측은 귀측이 최단시일내에 국제핵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 92년도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했었다』고 강조.
○…연형묵 총리는 30여분간의 기조발언을 통해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하나하나씩 거론하면서 이를 「합의서 해석의 기준」이라고 강조하고 방북 구속인사의 석방을 요구.
연총리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훌륭한 합의도 이행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빈 종이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합의서의 원만한 실천을 촉구.
그러나 연총리가 『자주적으로 통일하면서 외세의존을 반대하고 애국운동에 나선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것은 명백한 언행의 불일치』라며 「주한미군철수」「보안법 철폐」「방북구속자 석방」등을 요구하자 남측대표단은 다소 언짢은 표정.
연총리는 『북과 남이 시급히 공동보조를 취할 문제로 대일 관계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말하겠다』며 정신대를 언급.
연총리는 『정신대문제는 비단 북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남에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니며 우리겨레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간 그들로부터 강요당한 전민족적 수난과 모욕의 일단』이라며 『이러한 때 북과 남의 당국이 일본에 대하여 공동으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응당한 것』이라고 언급.
○…연총리는 남측대표단의 주석궁 방문일정을 의식해서인지 연설내내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보며 오전 11시30분이전 회담종료를 위해 애쓰는 모습.
양측은 당초 기조발언이후 한시간 이상의 비공개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환담과 공개회담이 길어져 비공개회담을 서둘러 마치고 주석궁으로 출발.
○…평양에서 계속된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틀째 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한시간 앞당긴 오전 9시부터 시작.
이는 회담을 일찍 끝내고 우리측 대표단이 금수산의사당(일명 주석궁)으로 김일성 주석을 예방,오찬을 함께 하는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
○…이날 기조연설에 앞서 양측은 잠시 환담을 나눴는데 정총리는 『하랑과 진장군은 우리의 전통미덕인 충효와 신의를 강조한 영화더라』며 『그런 영화를 서울에 와서 방영하지 않으시겠느냐』고 했고 연총리는 『받아주시겠느냐』고 질문.
이어 정총리는 평양체육관에서 관람한 집단체조를 화제로 삼으며 『내년 8,9월 대전박람회가 열려 세계 70여국이 참가,전시와 공연을 갖게 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측의 평양교예단이 대전 박람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시지요』라고 권유.
○…연총리는 합의서 발효에 대한 남측반응을 물었으며 정총리는 『남한의 언론들이 어제 있었던 합의서 발효를 대서특필했으며 특히 서명과 문본교환등 의식절차가 남한에 생중계돼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으로 안다』고 답변.
정총리는 신문들이 생중계된 TV화면을 싣고 남북간방송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크게 보도했다면서 『앞으로 평양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등 각종 스포츠도 생중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
연총리는 『회담을 시작한지 1년반만에 합의서를 발효시키게 됐다』며 『정총리가 서울에 가시면 그동안 회담을 이끌었던 강영훈 총리선생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
▷북측 반응◁
남북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된데 대해 북한언론들은 상당히 많은 양을 할애,보도해 남북이 화해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20일자 로동신문은 6개면중 4개면에 걸쳐 합의서 발효와 관련한 기사를 실었으며 「남북합의서」「비핵화공동선언」「분과위구성·운영하의서」와 발효문안의 전문을 게재.
이 신문은 1면 사설을 통해 합의서발효를 『평화통일을 위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90년대 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확실히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
19일 저녁 8시 중앙TV는 약 35분간 해설없이 3개합의서를 낭독한뒤 우리대표단의 인민대학습당 참관 모습을 화면과 함께 보도.
그러나 로동신문은 사설과 해설기사에서 「교류우선」에 대한 반대입장과 국가보안법의 철폐주장을 계속,아직 「빗장」을 완전히 내리지는 않은 모습.
북한기자들은 『합의서도 발효됐으니 이제 상호비방·중상하는 기사는 쓰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리측 기자들의 주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고 그렇게 될것』이라고 말해 북측언론의 변화가능성을 시사.
한편 우리대표단의 이동복 대변인은 『서울에서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방송이 우리에 대한 비난을 삼가는 등 뭔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긍정평가.
▷실무대표접촉◁
핵문제해결을 위해 오후 8시부터 우리측 대표단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열린 실무대표접촉은 자정이 넘도록 마라톤회의를 거듭.
그러나 양측 회담관계자들은 접촉내용을 묻는 질문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보여 주목.
심야 대표접촉이 진행되는 동안 남측 기자단은 숙소에서 김정일 비서 생일에 맞추어 개봉된 「하랑과 진장군」이라는 영화를 관람.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우국충정과 신의를 강조한 것으로 지난해 10월 4차회담중 우리측 대표단이 평양교외 조선영화촬영소를 참관했을때 촬영중이었던 작품.
▷집단체조◁
남측대표단은 북측의 관람요청을 받아들여 19일 오후 4시50분부터 50분간 인민문화궁전옆 평양체육관에서 북측학생 5천여명이 벌이는 집단체조를 보았다.
정총리 일행이 귀빈석에 앉자 대형스크린에 「고위급회담성과축하」라는 글자가 나타났으며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체조를 시작.
체육관에는 3만여명의 평양시민들이 3층객석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원히 당과 함께」라는 제목의 이 체조는 김정일 비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6일 처음 공연됐던 것으로 이날은 남측대표단을 의식해 선전성구호나 그림을 뺐으며 공연시간도 1시간30분에서 50분으로 줄였다고.
평양시내 인민학교·고등중학교학생 5천여명과 평양교예학교의 학생·밴드·합창단들이 수준높은 솜씨를 보였다.
▷인민대학습당◁
남측 대표단은 19일 오후 북한의 국립도서관격인 인민대학습당을 둘러 보았다.
정총리일행은 전주남총장의 안내로 8층건물내 곳곳의 학습현장을 관람했는데 전총장은 『보유장서가 3천만권이나 된다』고 설명.
이곳 직원들은 남측 기자들에게 정총리가 지나가도록 정해져있는 곳으로만 안내.
새날 정비공장 노동자라는 홍봉덕씨(35)는 『수령님의 배려로 15일 휴가를 얻어 공부하러 나왔다』며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진것이 우리에게는 맞지않는다는 것을 3대혁명사상에 기초해 논문으로 작성중』이라고 말했다.<평양=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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