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단체 인물난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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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간판급 여성 단체들이 지도자 부족으로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이는 특정 회장들의 장기 집권에 따른 후유증으로 공 조직으로서 여성 단체의 조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특정인의 사 조직화를 심화시킴으로써 여성 단체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단체들이 조직 면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외·내부적 훈련을 통해 여성 지도자들을 발굴·양성하는데 힘써야할 것으로 보인다.
35개 지부 25만여명의 회원을 가진 대한 주부 클럽 연합회의 경우 김천주 회장이 지난해 명예 회장으로 물러선 후 1년 동안 3명의 회장 (직무 대행 포함)을 거치는 등 표류를 거듭하다가 끝내 지난 14일 김 명예 회장의 회장 복귀로 막이 내려진 일은 여성 단체들의 「지도자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김천주 주부 클럽 회장은 회장 선출 직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그간의 회장 표류의 이유로 ▲기안·대외 관계 등 실무 경험 부족으로 인한 자질 문제 ▲개인 차원에서 끌어 모은 회 후원 회원들의 반발로 인한 운영의 문제를 꼽았다.
사실 이같은 문제는 특정인이 회장으로 장기 집권을 해왔거나 김 회장의 경우처럼 실무를 통해 오랫동안 그 단체의 터줏대감 구실을 함으로써 「간판」으로 군림해온 이들이 있는 단체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15년 이상 한명의 회장이 독주해오고 있는 여성 단체도 적지 않다. 현 회장들 가운데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는 여귀옥 대한 기독교 여자 절제회 연합 회장. 70년부터 회장직에 올라 올해로 23년째가 된다.
지난 74년 임영신 초대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던 한국 부인회 박금순 회장이 올해로 19년째가 되며, 76년 여성 문제 연구회의 4대 회장이 된 박정자 회장은 17년째다.
77년 전국 주부 교실 중앙 회장이 된 이윤자 회장도 올해로 16년째에 접어들며, 78년 설립된 한국 소비자 연맹도 정광모 회장이 창립 이후 지금까지 계속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단체에서는 회장 연임 제한 규정도 없을 뿐 아니라 후진 양성 또한 극히 미미한 실정. 이들 장기 집권 회장 가운데는 유일하게 한국 부인회만이 연임제한 규정을 두고 있어 오는 4월 회장이 교체될 전망. 부인회 초창기부터 관여, 실무 부회장을 거쳐 회장으로 있으며 「간판」으로 군림해온 박 회장의 거취가 주부 클럽 사건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한국여성개발원이 『여성 단체의 조직과 운영』이라는 자료집 발간을 통해 단체를 이 끌어가는 노하우를 밝힌 것도 지도자 부족을 해결하려는 취지. 중앙대 산업 교육원에서 올해부터 「여성 지도력 훈련 과정」을 주1회 1학기 과정으로 개설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김숙희 대한 YWCA 연합 회장은 『우리 나라 여성 운동은 정착돼 가고 있으나, 조직 면에서는 아직까지도 「개인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여성 단체가 공 조직으로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도자 양성에 힘써야한다고 말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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